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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2024-19] "이 시대 지식인들의 시국선언"

작성자
교육선전실
작성일
2024-11-18 21:20
조회
77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로 발간합니다.

  

이 시대 지식인들의 시국선언 

박정원(전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경제학)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제5공화국 시절 이후 오랜만에 보는 현상이다.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업무에 종사하는 교수들이 집단으로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규탄하고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군사 쿠데타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군사정권에 맞서 시국선언을 했던 교수들의 투쟁을 떠올리게 된다. 

 교수란 누구인가? 각자의 양심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여 인류문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이다. 본질적으로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교수들의 집단 선언은 이 시대 양심의 소리이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교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법적으로도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교수가 연구만 잘하면 되지,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겁한 주장이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이다. 산적 무리가 마을을 강탈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발견한 마을의 서생더러 소리치지 말고 자기 일이나 하고 있으라는 말인가? 솔직히 말해 서생의 외침을 막으려는 자는 산적과 내통하는 자이거나 산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무너뜨린 정치지도자의 행위에 대해 국민들은 그 책임을 물을 권리를 갖고 있다. 국민들이 위임한 권한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행사되어야 하고, 법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권력 행사의 목적 또한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높은 권력자라 하더라도 이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제재를 받아야 하고, 선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한다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냉철한 정신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연구자들이 분노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과 폭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에 집중되고 있다. 첫째, 공익을 위해 행사해야 할 검찰 권력을 사익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객관적으로 규명할 특검을 수용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또 공당의 선거 입후보자 공천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검찰은 이러한 의혹들을 모두 희석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국민의 70% 이상이 특검을 통해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윤대통령 자신은 특검을 통해 명성을 얻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자신이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특검이 헌법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납득하지 못한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외교·경제·교육의 개혁과 발전을 이끌어 가기에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선 일본과의 관계에서 주권국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한국인 노동자 불법 강제 노동과 반인권적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도 외면하고 있다. 독도를 당당하게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등 국토수호 의지가 없다. 반민족적 친일 극우 인사들을 요직에 대거 등용하여 민족의 정기를 흐리고 있다. 

 셋째, 외교를 보는 관점이 없다.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실용주의 노선이 현대 외교의 주류이건만, 윤석열 정권은 명분과 실리 중 어떤 것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은 한민족으로서 평화와 공존의 길을 가야 한다. 만에 하나 이 좁은 국토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남북 모두 궤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인데도 화해의 길을 모색하기는커녕 대립과 충돌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신뢰감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민족적 이익의 관점에서 동북아 정치를 보지 않고, 한미일 3각동맹의 하부 구성원으로서 행동할 뿐이다. 윤정권 집권 이후 남북 관계는 계속 악화하고 있으며, 조국 통일의 전망은 불투명해지고 있다. 심지어 우리와 직접 이해관계가 크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까지 덜컥 뛰어들 기세를 보이고 있어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넷째,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무능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고,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물가가 치솟아도 대책이 없다. 대규모의 부자 감세는 적자재정을 심화시키고 건전한 재정정책을 무력화시켜 경제의 활력이 죽고 있다. 지방을 살리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지방소멸은 가속도가 붙고 있다. 과학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해야 할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주변국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자승자박(自繩自縛)하는 한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간 한국경제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오던 중국 및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악화시켜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다섯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도, 윤대통령은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들의 목숨보다는 정권 안보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이를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감추려는 태도를 보였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된 안타까운 용산 참사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자가 없으며, 해병대원 사망사건에서 보인 진실 감추기 행태는 국민들을 실망과 분노로 들끓게 했다. 이제 경찰까지 동원하여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규탄하는 국민들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까지 침탈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국민들은 군사정권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노동·연금·교육 부문에 대한 개혁을 꼭 이루겠다고 하지만, 어떤 개혁인지 밑그림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각 부문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인지 그 구체적 절차와 내용이 없다.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이미 OECD회원국 가운데 최장인데도, 이를 더욱 연장하려고 한다. 노동자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다. 교육과 의료분야 전문가들과의 소통 없이 의대 정원을 일방적으로 확대하여 대규모의 혼란을 초래했으며, 아직도 수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모들과의 협의 없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려 하더니, 이번엔 비리 사학의 원상 복귀를 허용하는 조치를 시행하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개혁이란 말인가? 국민들에게 개혁의 목표를 알려야 하지만 이마저 거부한다. 언론과도 대화하지 않는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껄끄러운 국회에는 아예 시정연설을 하러 가지도 않는다. 

 이러한 문제들을 통해 볼 때, 윤대통령은 업무 수행 능력이 심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퇴하라는 것이 교수들의 계속되는 시국선언의 요체이다. 도대체 대통령이 되고자 결심했을 때 가졌던 생각은 다 어디로 갔는가? 원래 아무런 계획도 없이 대통령이 되었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는가? 국민이 맡긴 권력을 사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휘둘러져서는 더욱 안 된다. 우리 국민들은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정적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민족사의 비극을 기억한다. 당시 이 나라의 국민들은 이러한 내용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이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대통령에게 그 자리에서 속히 물러나라고 교수들은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그간의 잘못을 국가와 국민에게 사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교수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했으며, 한국 대학교수들의 의식이 성숙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식인으로서 자기 이익을 중시하기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모습이다. 어떤 조직체이든 부패하거나 정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상당한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지만, 이런 분들 없이 조직이 발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부고발자 또는 공익신고자(whistle-blower)라고 불리는 이들의 역할은 언제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제 그 조직이 국가와 사회라고 했을 때, 누가 공익신고자가 되어야 하는가?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부와 권력을 직접 추구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 교수들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을 생각할 수 없다. 

 조직이 부패하여 무너지기 전에 공익신고자가 문제를 제기해야 국민들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시정할 수 있게 된다. 부패한 현실을 잘 인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지식인들은 힘껏 호각을 불어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있다. 지식인들이 이 임무를 훌륭하게 이행할수록 사회가 깨끗해진다. 사실 그동안 교수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잘못된 현실에 눈을 감고 있던 교수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부끄러운 모습을 훨씬 더 많이 보여온 것이 이 땅의 교수들이다. 그러기에 이런 중차대한 위기를 맞이하여 분연히 사회의 내부고발자로서 일어선 교수들은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지식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 사회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간절한 요구는 결국 수용되고야 말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우리 사회와 고등 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끝)

2024년 11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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