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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2024-12] 교수논평_치자(治者)를 위한 법, 약자를 위한 법

작성자
교육선전실
작성일
2024-07-22 15:04
조회
240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로 발간합니다.

  

치자(治者)를 위한 법, 약자를 위한 법

남정희(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대전대)

 

지부나 지회의 간담회를 다니다 보면 법원의 판결문을 보이며 억울해하는 조합원을 만나게 된다. 법이 상식을 벗어나 있고, 너무 약자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법이란 대체로 힘 있는 자가 다스리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권력자는 그 법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약자를 지배한다. 몇 개의 예를 살펴보자.


  어느 사립대학의 비정년 교수가 60세 정년퇴직 규정에 따라 퇴직하며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이 국공립대학교 교수의 정년 65세를 준용하지 않아 사립학교법을 위반하였다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으나, 고등법원에서까지 패소하였다. 판결문에는 사립학교 교원의 정년에 관하여 교육공무원법 제47조 제1항(고등교육 교원의 정년은 65세)이 준용된다고 해석할 경우 사립학교 교원의 정년이 65세로 일률적으로 확정되는 결과가 되고, 사립대학은 교원의 정년을 65세를 초과하여 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사립학교법의 입법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 정년을 70세로 정한 사립대학이 있나? 그런 이야기는 과문한 탓인지 들은 바 없다.  아, 국공립대학 강사는 정년이 65세이지만, 70세로 규정한 사립대학을 보기는 했다. 사립대학의 자율성은 교수의 처우를 약화시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놀란 교수들이 교육부에 질의서한을 보냈는데, 그 회신에도 사립대학 교원의 정년은 국공립대학과 달리 개별대학의 정관에 정한 바에 따른다고 되어 있었다. 사립대학 교원의 정년은 대부분 65세였는데, 비정년제도를 도입하면서 비정년에 한하여 60세로 규정하는 대학이 더러 생겨났다. 정년 교원과 달리 비정년 교원은 젊을 때 쓰다가 나이 들면 버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 차별시정을 요구하는 방법이 최선인 듯하다. 어느 대학이 정년 65세 규정을 갑자기 60세로 바꾸어 버린다면? 교수들의 과반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이라 노동청에 신고하면 된다.


  사립대학 중에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만으로도 비정년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킬 수 있는 규정을 두는 곳이 더러 있다. 비정년 교원은 재계약에 필요한 강의 평가가 교원 중 상위 50, 60%이내여야 한다고 가혹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년교수를 강의평가가 나쁘다고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대학은 거의 없다. 교수는 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연구도 하고 봉사도 한다. 그런데 연구‧봉사 업적은 중요하지 않으니 강의전담 교수는 논문도 쓰지 말고 오로지 강의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합법이다. 인사권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 그래서 연구 없이 강의만 하는 교수들이 많아졌다. 연구 없이 강의만 잘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해결도 단체협약을 통하여 조금씩 완화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립대학에서는 비정년 교원에게 가족수당, 근속수당 등 정년교원에게 주는 각종 수당을 주지 않는다. 어느 교수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를 진정했는데, 위원회는 가족수당은 근로자라면 누구나 받아야 할 수당이라면서 시정 권고를 하였다. 물론 그 학교에서는 위원회의 권고사항은 기속력이 없다면서 시정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다른 교수가 위원회의 결정문을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놀랍게도 법원은 가족수당을 줄지 말지는 인사권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사립대학의 인사권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제도 단체협약을 통해서 개선할 수 있고, 드디어 비정년 교수들도 가족수당을 받게 된 학교가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서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구나 하고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노사협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노사교섭이 결렬되어 중앙노동위원회로 간 경우 공익위원들의 조정이 있게 되고,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중재가 있게 되고, 중재결정문이 나온다. 그러면 학교에 따라 불복하여 행정소송 제기와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하기도 한다. 집행정지 1심은 1달 안에 결정해야 하므로 재판 결과가 일찍 나온다. 1심에서 집행정지가 기각되면 중재재정의 효력이 살아있으므로 이행하여야 하지만, 행정소송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때까지 이행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학교도 있다. 행정소송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려면 3년쯤 걸린다. 물론 이런 버티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이 법적용을 잘못하기도 한다. 교원노조법을 적용하며 행정소송이 확정되기 전까지 버티는 대학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노조법에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효력은 살아있는 중재재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교원노조법에 없는 조항은 일반노조법을 적용하면 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법이 정말 정교하구나 생각할 수 있다. 법 절차를 밟아 혜택을 받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법은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국회에서 약자를 위한 법 하나를 통과시키려면 얼마나 힘든가? 피해자가 속출하면 입법운동도 하고 시위도 하여 어렵게 법이 만들어져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번번이 입법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노조가 정치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2024년 7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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