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입법기능 간섭·냉전의식 보여줘”
일반
작성자
cmo
작성일
1970-01-01 00:00
조회
2380
■ ‘보안법 관련 대법판결 비판여론 확산
사회현안 발언자제 평소태도 뒤집어
"냉전의식 확인"…인적개혁론 가능성
“대법원이 작심하고 반대한 것 같다.”
2일 나온 대법원의 국가보안법 사건 판결문을 접한 법조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런 반응을 나타냈다. 실제로 이번 판결문은,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와 법조항·판단 등으로 구성되는 기존 판결문과 달리, 대법원의 확고한 ‘의견’을 담고 있다. 검찰 공안부의 관계자조차 “‘무장해제’나 ‘체제수호’ 등 표현으로 볼 때,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담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대법원의 이번 ‘발언’은, 그러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게 돼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사법소극주의’라고 부를 만큼, 사회 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개개 사건의 쟁점을 넘어 그 본질에 해당하는 사회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 표명을 해온 미국 연방 대법원 등의 ‘사법적극주의’와, 우리 대법원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대의 숨죽인 판결까지 들춰내지 않더라도, 몇해 전부터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떠오른 각종 차별과 소수자 문제 등을 두고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발언한 사례가 거의 없다. 한 대학교수는 “정작 중요한 가치판단을 해야 할 사건은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무수히 각하한 것이 우리 대법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랬던 대법원이 갑자기, 유독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폐지반대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헌법학)는 “사법적극주의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특히 입법·행정부가 진보적일 때 사법부의 적극주의는 사법보수주의로 흐르기 십상”이라며 “이번 판결은 사법적극주의의 형식을 띤 사법보수주의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은 판결문의 내용과도 직결된다. 특히 판결문에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북한의 ‘남침야욕’이 그대로라는 1970년대식 전제 아래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일방적인 무장해제론’으로 규정하고, 뚜렷한 근거도 없이 요즘 우리 사회에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고” 있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반면, 추상적인 규정만으로 사상·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해 온 보안법의 본질적 문제를 고민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민변의 한 중견 변호사는 “아주 오랜만에 80년대 판결문을 다시 보는 느낌”이라며 “최소한 이번 판결에 관여한 대법관들이 얼마나 분명한 냉전의식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당장은 한나라당 등 국가보안법 존치를 주장해온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인적 개혁’이라는 부메랑으로 대법원에 되돌아올 공산이 크다. 살아온 이력과 경로가 비슷한 50~60대 엘리트 출신 대법관들의 보수적 의식과 그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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