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박근혜 패러디'는 불륜, 욕설연극은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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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imi
작성일
2004-08-30 17:00
조회
2884
'박근혜 패러디'는 불륜, 욕설연극은 로맨스?

[대통령 욕설 연극] 비판받는 한나라당의 '이중 잣대'







"연극은 연극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 성적 비하와 욕설을 퍼부은 연극 '환생경제'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29일 임태희 한나라당 대변인이 진화에 나서며 부랴부랴 내놓은 논평의 첫 문구다. 이 연극은 한나라당 의원들 24명으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의 첫 작품으로, 전남 곡성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 첫 날인 28일 밤에 공연됐다.



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풍자극의 내용은 도외시한 채 부분적인 대사 몇 개를 빌미로 연극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은 올바른 문화적 자세가 아니"라며 "여당은 우리 연극이 의미하는 뜻을 깊이 새겨 경제와 민생살리기에 전념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논평 말미에서는 "정치권이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두루뭉수리하게 사과하고 넘어갔다.



임 대변인이 말한 이날 연극의 '부분적인 대사 몇 개'는 이렇다.



번영회장 "안녕하세요."

노가리 "자식 새끼가 죽었는데 안녕은 무슨 안녕!"

부녀회장 "인사를 해도 욕을 하는 뭐 이런 개×놈이 다 있어."

노가리 "이쯤 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

부녀회장 "사내로 태어났으면 불×값을 해야지. 육××놈. 죽일 놈 같으니라고."

노가리 "나도 다 사정이 있어요. 경제 죽고 나니 가슴이 싸릿싸릿 하오. 근데 내 탓이 아니고 순전히 집터가 안 좋아서 그런 거 아니요. 명당이라면 집안 꼴이 이런가. 그런데 마누라는 (이사를) 기를 쓰고 반대하니. 부창부수라고 하는데 복장 터지요."

(장면이 바뀌어 친구들이 근애를 위로하며)

번영회장 "근애야, 이혼해."

부녀회장 "그래 이혼하고 위자료로 그거나 떼달라 그래, 그 거시기."

번영회장 "그 놈은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이야."



이 연극에서, 둘째 아들 '경제'를 영양결핍으로 잃고 매일 술주정만 해대며 집터만 탓하는 무능한 가장 '노가리'는 누가 봐도 노 대통령을 빗댄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거시기를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불×값도 못하는' 남편 노가리를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죽은 아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근애'가 박근혜 대표를 뜻한다는 건 더 쉽게 알 수 있다.



임 대변인의 충고처럼 올바른 문화적 자세를 갖고 이 풍자극의 내용 전체를 보려고 해도, 왜곡된 현실을 비틀고 뒤집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연극이라는 외피를 빌어, 평상시에는 국회의원이라는 체면 때문에 입에 담지 못했던 대통령을 향한 욕설과 비아냥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또한 권선징악의 판박이 구도 속에서 '절대선'으로 박근혜 대표를 묘사한 것도 조악하긴 마찬가지였다.





"연극 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옳은 소리했다'고 하더라"





'노가리' 역을 맡아 노 대통령을 무능한 가장으로 묘사하는데 앞장섰던 주호영 의원은 연극이 끝난 뒤 29일 새벽 기자실을 찾았다. '연극 내용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주 의원은 "별로 의식하지 못했다"며 "닷새 동안 연습하는데만 급급해 그런 점에는 신경 쓰지 못했다"고 양해해달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기자들에게 "(연극을) 너무 정치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했다.



'근애'역을 맡은 이혜훈 의원이나 '부녀회장'역을 맡은 박순자 의원도 일부 대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에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혜훈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골적인 표현 가운데 일부는 대사에 없었는데 준비 기간이 짧아 대사를 제대로 못 외운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것 같다"며 "전체적인 흐름에는 문제가 없지만 일부 대사가 부적절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박순자 의원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역이 부담스러웠는데 박찬숙 선배가 밀어붙여서 하게 된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털어놓았다.



'저승사자'역을 맡았던 주성영 의원은 "물론 불량기 있는 표현들도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쳐다봐서야 되느냐"며 "열린우리당에서 (연극을 비판하는) 논평을 썼다는데, 우리를 질투하는 자격지심 때문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또한 그는 "연극을 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옳은 소리했다'고 하더라"며 "우리는 그냥 즐겁게 놀았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달라"고 덧붙였다.



연극에 출연했던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처럼 '연극은 연극일뿐'이며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달라'고 입을 모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들이 뭐가 문제인지를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현장 취재기자들의 전언이다.



관객으로서 연극을 지켜봤던 한나라당 의원들도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관람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물론이고 박근혜 대표도 '노가리'를 씹는 대목에서는 크게 웃으며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는 연극 관람 후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이번 연극은) 프로를 방불케 하는 연기였다"고 호평했다. 좀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박 대표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대단한 칭찬인 셈이다.





네티즌 "박통 때였으면 다들 내란음모죄에 사형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감각'과는 달리 바깥의 평가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평소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던 한 중견 언론인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연극을 동영상으로 보고난 뒤 "연극의 탈을 쓴 언어적 테러"이자 "정말 구역질 나는 연극"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대통령한테 저래도 되는 거예요'라고 묻는 초등학생 아들의 질문을 받고는 민망해서 혼났다고 했다.



'피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쟁에 휘말릴 수 있어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고, 청와대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지 안 할지도 아직 모르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심한 일"이라고 혀를 찼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는 물론이고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연극평'이 쇄도했다. 29일 하루만 해도 한나라당 e-게시판에는 300개가 넘는 관련 게시글이 올라왔고, 대부분이 이번 연극에 대한 비난 글이었다. 이 게시판이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무척이나 뜨거운 반응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일부다.



역시 한나라당이었습니다

"연극 잘 봤습니다. 이번 기회에 의원님들 아예 연기하시죠? 머.. 넘버3 같은 영화 어떨까요? 욕도 무쟈게 잘하시던데... 그게 좋겠네요. 어차피 다음 총선에는 한나라당 없어질것 같으니까 딴 직업 구해야죠. ^^"(아이디: kissmini58)



박통 때 이런 연극했으면 다들 내란음모죄로 사형이다

"박통 때 이런 연극을 했으면 전부 다 국가보안법에다 국가원수 모독죄에다 심지어는 내란 음모죄로 다 사형선고다. 감당할 수 없는 자유가 주어지니까 국가원수까지 모독하는 딴나라 의원들은 다들 알아서 사퇴하길 바란다. 모든 관계에서 아무리 서로 비판하고 원수같은 사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아이디: yechu7)



연극... 분노합니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가르키는 시간강사입니다. 순수한 예술(연극)을 통해서 당신들이 한 짓은 대통령의 모독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나라당원도 아니고 더욱이 열린우리당 당원도 아닙니다. 연극이 그저 당을 위한 목적과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연극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만든 연극은 풍자도 패러디도 아닙니다. 연극이라는 표현조차 쓰지 마십시오!"(아이디: film21c)



'정치 풍자극'에 대해-유학생 올림

"어서 빨리 공부해서 모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위해 일해보자 마음 먹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 이 동영상을 본 뒤 다들 한국은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루 하루 힘들게 유학 생활하며 우리는 이 곳에 온 것만으로도 혜택 받았다고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젊은 인력들에게 당신들이 보여준 행동은 모국에 대한 절망감만 심어주었습니다."(아이디: rimiko)



이 뿐만이 아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나라당이 당명 개정도 한다니 이번 참에 '거시기당'으로 바꾸라"고 꼬집었다. 또한 "차떼기에 이어서 탄핵 그리고 연극까지... 배울만큼 배우신 분들이 꼭 찍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느냐"며 회원 탈퇴를 선언한 네티즌도 있다. 모두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실명 회원으로 등록한 이들의 목소리다.







어느 때보다 한나라당의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킨 연찬회





이번 한나라당의 '노 대통령 욕설' 연극에 대한 비난이 거센 데에는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한마디로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이중적인 잣대'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연극이 연극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전에 패러디는 왜 패러디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청와대 홈페이지의 한 코너에 박근혜 대표의 패러디 사진을 담은 네티즌의 글이 게재됐다. 영화 '해피엔딩'의 다소 선정적인 영화 포스터에 박 대표의 얼굴을 짜깁기한 패러디 사진건과 관련해 당시 박 대표는 "말이 안되는 한심한 일"이라며 "이런 식으로 하면 끝없는 국론분열과 정쟁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데 지금 그렇게 할 때냐"고 청와대를 힐난했다.



그런 박 대표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직접 배우로 나서 노 대통령을 겨냥해 욕설과 성기 묘사로 비난한 연극을 보고는 크게 웃고 심지어 "프로들의 연기"라고 추켜세운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는 것이다. 더욱이 사안의 심각성에 비쳐볼 때도 이번 연극 파문이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공식 반응은 박 대표의 표현보다 훨씬 격했고 집요했다.



7월 14일 한선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여성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행동을 청와대가 앞장서 자행한 것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홍보수석 등 책임자 엄중문책을 요구했다. 그는 당시 브리핑 때 "개인적으로 정치를 하기 싫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다음날인 7월 15일 전여옥 대변인도 "청와대의 홈페이지에 '저주의 굿판'이 벌어지고 음란 사이트를 방불케 하는 천박한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민은 분노에 앞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알고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대통령의 사과를 거듭 요구했다.



그 다음날인 7월 16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당내에 청와대 저질 패러디 진상 규명 및 재발 근절대책 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며 이계경 의원을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같은날 한선교 대변인은 "이번 사태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며 "청와대는 책임을 회피함으로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당시 패러디 사건과 관련해 3개월 직위해제라는 중징계를 당했던 청와대 비서관이 한 달 후 다른 부서로 복귀하자, 또 다시 한나라당의 공세는 이어졌다. 21일 전여옥 대변인은 "세상의 상식은 물론 국민의 감정은 손톱만치도 개의치 않는 유례없는 인사"라며 "이제 청와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청와대 사전에서 삭제하기로 작심한 듯 하다"고 꼬집었다. 같은날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들은 '충격적인 패러디 주역의 금의환향'이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시 박 대표의 패러디 사진건에 대해서는 비판 여론에 힘입어 분개하며 총공세를 펼치던 한나라당이 이번 '노 대통령 욕설 연극' 파문에 대해서는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건 군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8일 전여옥 대변인은 한나라당 연찬회에 대해 "이 땅에 야당의 존재와 증명을 새롭게 하는 장이 될 것"이라며 "동시에 다수당이자 책임여당의 나태와 무능과 혼돈에 휘둘린 국민들에게 희망과 극복 그리고 도전의 용기를 주는 새 출발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 대변인의 예측대로 이번 연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한나라당의 존재와 증명을 새롭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과연 희망과 용기를 주었는지는 한나라당 스스로 자문해볼 일이다. 이미 초등학생도 맞출만큼 쉬운 정답이 나와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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