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대학현실에 대한 민교협과 교수노조의 견해 -용봉아르미에서

일반
작성자
비정규전남대분회
작성일
2004-07-28 17:00
조회
3016







용봉가족 여러분!



현 총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학내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분열을 걱정하면서



이 중대한 문제에 침묵만 할 수 없어 저희들의 입장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견해는 어떤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저희 구성원들의 토론을 거친 공동의 견해임을 밝혀둡니다.



모쪼록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더 좋은 의견을 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7월 27일



전남대 민주화교수협의회/전남대 교수노조 일동











작금의 대학현실에 대한 민교협과 교수노조의 견해





우리 민교협과 교수노조는 굴곡 많은 지난 역사의 길목마다 국가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올곧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어 왔다고 자부합니다. ‘비판’은 ‘비난’과는 다른 것으로서 대학의 지성인에게 특히 요구되는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전국적인 조직으로서 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관련된 여러 사회적․정치적 의제들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정작 학내 문제에 관해서는 가급적 말을 아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대학이 처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최근 몇몇 교수들이 제16대 총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유쾌하지 않은 소문들과 연관된 문제 제기를 했으며, 대학 본부에서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온몸으로 쓴’ 문제 제기에 대해 대학 본부는 ‘손가락 끝으로 쓴’ 글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하고 표현 하나하나 다듬기를 거듭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문제제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대학 본부의 답변은 상투적이며 불성실하고 문제의 핵심을 피하기에 급급하며 투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학 본부는 특정 교수들을 상대로 답할 것이 아니라 학생, 직원, 교수, 동문 등 전남대학교 가족 전체를 상대로 답해야 합니다. 또한 소문에 직접 연루된, 모든 책임을 떠맡을 수 있는 분이 직접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기된 의혹이 예외 없이 악성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단지 정책 판단의 성패 여부가 아니라 부정이나 비리, 혹은 우리 대학의 품위 손상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정책에 따라서는 구성원들의 의견이 서로 달랐던 적도 있었고, 집행부에 대해서도 무능하다거나 독선적이라는 비판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되고 있는 사안들은 과거의 것들과는 달리 하나같이 대학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성격의 것들입니다. 그런 만큼 제기된 의혹들은 총장의 임무 교대와 상관없이 끝까지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시 연구실로 돌아올 총장 및 보직 교수들이 어떻게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최근에 문제 제기한 김석현 교수는 낯뜨거운 의혹들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들고 있는데 대학 본부는 전체적으로 사실 무근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느 쪽에 설득력이 있고, 또 어느 쪽에 입증책임(burden of proof)이 있겠습니까?

지난 4년을 되돌아보건대 우리는 가장 큰 문제점을 한마디로 ‘소통의 부재’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직선으로 선출된 총장은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운영의 소신과 철학을 밝힌 바 있었고, 이 내용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대학 홈페이지 토론광장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의 첫 줄은 이렇습니다. “대학 운영의 원칙: 학교 구성원의 중의를 모은다.” 어떻습니까? 지난 4년 우리 대학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구성원의 의견이 모아져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기보다는 결정된 사항을 그저 구성원들에게 통보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결과 그 어떤 시기보다도 의견 대립과 다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대립의 양상은 격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총장이 초심 및 약속과는 달리 민주적 리더쉽이 아닌 독선적 리더쉽으로 기운 탓으로 봅니다. “세계로 열린 지식 공동체”, “창의적 연구 공동체”, “자율적 학습 공동체” 등 ‘공동체’라는 표현을 그렇게도 즐겨 썼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난 4년처럼 이렇게 공동체가 망가진 적은 없었습니다.

‘소통의 부재’는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대학 본부가 신속하고도 충분히 성의 있게 대처하지 않아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입니다. 사실 김교수의 의혹 제기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5.18 기념 조형물의 경우에는 입찰 과정의 불공정성이 오래 전에 이미 제기되었으나 대학 본부는 충분히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봉지 근처에는 “총장 업무추진비 전국 2위”라고 쓴 현수막이 학생들에 의해 꽤 오랫동안 내걸렸는데 이에 대한 답변도 없었습니다. 현수막을 보고 지나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총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사실 무근이라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까? 임기 내내 지속된 소통의 부재 끝에 나온 김교수의 총괄적 지적에 대해 새삼스럽게 ‘내상’ 운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의혹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그런 의혹 제기에 대한 대처가 대단히 미숙하고 불성실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대학 본부 스스로 인정한 ‘신뢰의 상실’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제기된 몇몇 의혹이 총장이나 대학 본부뿐만 아니라 전남대학교 구성원 전체의 자긍심을 무참히 훼손한다는 사실입니다. “관례, 의례, 규정에 따라” 별도로 있지도 않은 총장 공관 유지관리비가 지출되었다거나 그 명칭도 고색창연한 “총장 주요업무 추진실적 자료집”을 수천만원 예산을 들여 만든다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21세기 세계로 열린 대학이라는 표어와 구시대 관행이라는 것이 조화될 수 있는 말입니까? 진작 폐기되었어야 할 일을 관례라는 이름으로 계속하면서, 반면 시간강사들과 관련해서는 전국 대학 가운데 가장 강경하고도 무모하게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러한 난맥상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총장 직선제의 그늘에 주목합니다. 그렇게 지적하고 경고했건만 총장은 자신을 밀어준 인사를 주요 보직에 임명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심했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구성원 가운데 한 분은 ‘엽관제’(spoils system)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토론광장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발벗고 뛰었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바로 그 후보가 당선되었을 경우에 일체의 보직을 맡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점잖음도 유지하지 못하면서 학생 앞에서 온갖 고상한 이야기를 하고, 사회를 향해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글을 현 총장 및 집행부만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이 분들이 솔직하고도 용기 있는 마무리를 하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퇴장하기를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곧 우리 대학의 조타수가 될 제17대 총장 및 집행부에게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소 진부한 비유지만 전남대학교의 구성원들은 한 배를 탔습니다. 이 배는 이제 바람과 파도에 무방비로 휩쓸리는 동네 나룻배가 아닙니다. 어느덧 자그만치 9백명 가까운 교수와 2만명 학생의 거대한 배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우리가 탄 배가 난파하거나 표류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규모에 걸맞게 민주적이며, 품위 있고, 합리적인 리더쉽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1. 대학 구성원들이 제기한 사안들, 특히 김석현 교수가 제기한 문제(7 가지 의혹과 5 가지 요구)에 대해 최고책임자인 총장이 조목조목 정면으로 답하십시오.





2. 대학 본부는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모든 구성원에게 있는 그대로 낱낱이 공개하십시오.













3. 모든 대학구성원에게 모든 의혹이 충분히 해명되지 않을 경우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본부에게 책임이 있음을 밝혀둡니다.







총장의 임무 교대를 앞두고 벌어진 최근의 논의들은 오히려 우리 대학이 아직은 자정능력을 잃지 않은 건강한 공동체임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어떤 편을 든다거나 어떤 다른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대학을 생각하는 충정에서 절제와 금도를 지키려 무진 노력했으며 노력할 것입니다. 역사는 고비마다 매듭을 지으면서 진전한다고 믿으면서 신구 총장 및 집행부가 제대로 된 매듭을 짓기를 당부합니다.







2004년 7월 27일







전남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 전남대학교 교수 노조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