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어느 교수님의 비정규교수들을 위한 글

일반
작성자
전남대천막농성
작성일
2004-07-11 18:00
조회
2392
이 글은 전남대 분회의 투쟁을 지켜보고 계시는 어느 교수님이 전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지금 전남대 분회는 천막농성 중입니다.

한국의 비정규 교수들은 권리위에 잠자지 말고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본부가 양보하라









20세기의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을 ‘만원 버스 승객의 자리잡기’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만원 버스에 탄 승객들 중에 어떤 사람은 한 두 정거장만 가도 옆자리가 비어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옆자리에 앉은 승객이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끝내 종점까지 서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학 교수 되는 것을 만원버스에서의 자리잡기에 비유한 베버는 자기 주변 사람들 중에는 자기보다 더 유능한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에 앞서 자기가 먼저 교수가 된 것은 자기가 운이 더 좋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대학 시간강사 선생님들이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그런 것처럼 그들도 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노조를 결성하기는 했지만 강사노조 역시 조직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취약점이 많은 집단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또 파업까지 감행하고 있습니다.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이 이런 행동을 감행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고 또 지금도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 지 충분히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어제 백영홍 교무처장님 이름으로 “시간강사 노조 학원장 회의 입장”이라는 문건이 아르미 토론방에 게시되었습니다. 학원장님들은 이 문건에서 세 가지 사항을 주문하였습니다. 첫째, 본부 측과 강사노조는 대화를 계속하라. 둘째, 본부 측은 교육부에 시간강사처우 개선책을 건의하라. 셋째, 시간강사들은 비교육적인 성적표 제출 거부를 철회하라.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학원장 회의의 결의사항에 틀린 주장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학원장님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시간강사들이 저렇게 생리에도 맞지 않는 집단행동을 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 얼마만큼 생각해 보고 결의안에 동의하는지요? 이런 사태를 야기한 근본 원인의 제공자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금 본부 측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부 측은 시간강사 노조가 학교 차원에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주장들을 내세워 협상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강사노조가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그 전부를 당장 해결하라고 주장한 것도 아니었고, 또 대부분은 정부를 염두에 두고 주장한 것이지 결코 학교 당국만을 대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강사노조가 현 (본부)집행부로 하여금 당장 실천해 주도록 요구한 사항은 단 하나였답니다. 금년 2학기 강사 위촉 기준으로 10년 이상 된 자들을 배제하고, 내년 1학기 때에는 7년, 2학기 때에는 5년, 2006년 1학기 때에는 3년 이상 된 자들을 배제하겠다는 기존 학교 방침을 철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무조건 철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가 일률적으로 임용 제한 연한을 정할 것이 아니라 학과의 자율에 맡기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본부 측은 말합니다. 현 집행부의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2학기 때 다음 집행부와 협의하라고. 겉으로 보면 그럴듯한 말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쟁점이 되고 있는 ‘10년 이상자 임용 배제 원칙’은 현 집행부가 만들었고 또 현 집행부가 2학기 임용 문제를 처리하고 물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부의 주장은 ‘차 떠난 후에 손들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강사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금년 1월이었습니다. 본부는 금년 1월에 각 학과에 1학기 강사 임용대상에서 3년 이상 된 자들은 제외하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런 공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도 3년 이상 된 자들은 가급적 배제하라는 공문이 항상 도달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번 공문은 조금 달랐습니다. 예외 없이 집행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과의 반대가 심하자 본부는 당초 방침을 철회하고, 대신 이 계획을 연차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2학기 때 10년, 그리고 7년, 5년, 3연식으로 그 기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본부의 이런 발상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정부의 개혁에 역행하고 또 그것을 악용한 반개혁적 발상이었습니다.



본부가 3년안을 강제 집행하려는 동기의 출발점은 교육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재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출발기에 시간강사제도 개선을 100대 공약사항으로 내 걸었습니다. 마침 작년에 한 시간강사가 처지를 비관하면서 자살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시간강사제도를 개선하라는 여론이 비등하였고, 그러자 정부는 우선 시간강사들에게 4대 보험 혜택을 부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조치를 시행하자면 당연히 추가재정부담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이 무렵 어떤 강사가 법원에 강사들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까지 제출하였습니다. 본부는 이 일련의 조치에 겁을 집어먹고 부랴부랴 시간강사 감축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정부가 개혁안을 내놓은 만큼 당연히 추가 재정부담도 정부가 담당해야 합니다. 전국의 국립대학들이 연대하여 추가재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학은 그런 노력 이전에 칼부터 뽑았습니다. 이 기회에 재정적 어려움을 내세워 강사 숫자를 줄여보겠다는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정부의 개혁방침과 사회 여론에 호응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행하고 더 정확히 말하면 악용하려 한 것입니다. “벼룩의 간을 내어 먹는다”는 속담이 상기됩니다.









둘째, 본부의 방침이 그대로 강행되었다면 강의에 심각한 파행이 초래되었을 것입니다.



금년 1학기 기준으로 우리 대학 시간강사 숫자는 600여명에 이르고 이들이 담당하는 강의는 전체강의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처음 계획대로 3년 안을 결행했을 경우 수백 명의 강사들이 강의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저희 사학과의 경우 3년 넘은 강사가 전체 강사의 80% 가량 되었고, 이런 사정은 인문대의 다른 학과들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수백 명의 강사 요원을 한꺼번에 교체해 버리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면서도 한번도 학과 여론을 수렴하지 않았습니다. 강사를 교체할 경우 대체강사는 존재하는 지라도 조사해 보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무모한 발상과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셋째, 재정적으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본부는 이본 조치를 시행하면서 강사 숫자를 줄이고 싶어하는 속마음을 내놓았습니다. 교수 숫자가 늘어낫는데 시간강사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문제이며, 이번 조치도 그런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논리를 수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간강사 연한을 제한하는 것과 강사 숫자를 줄이는 것 사이에 무슨 함수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시간강사 숫자를 줄이려면 개설강의 숫자를 줄이던가 혹은 전임교수의 강의 시간을 늘려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재정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강사임용 연한을 제한하는 것과 재정 부담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우선 3년 이하 경력의 강사들이라고 하여 강사료를 차등하여 지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년 이하 경력의 강사들이라고 하여 4대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연한 문제로 재임용 대상에서 배제대상이 된 강사 선생님들 중에는 학술연구교수 등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이미 4대 보험료의 지급 대상일 뿐만 아니라 또 이들에게는 직장이 있다고 하여 강사료도 일반 강사보다 적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들이 학교에 더 기여하고 있습니다.









시간강사 선생님들은 상식을 초월한 저임금과 차별 속에서도 우리 대학 강의의 약 40%를 담당하며 대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이들을 위해 할 수 있은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학문 연구와 강의에 임하도록 격려하고, 또 고마워해야 합니다. 본부는 지금이라도 일률적으로 10년 연한제를 강요하지 말고 학과 결정에 맡기기 바랍니다. 학과 사정에 따라 당장 2학기부터 3년 이상 된 선생님들을 위촉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사정에 따라 10년 이상 된 사람들을 위촉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신임교수 채용 때 박사학위 소지자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분야에 따라 예외를 허용하듯이 강사 임용 규정도 유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온갖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오로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강사 선생님들에게 더 이상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기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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