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다시 이용대 동지에게...

일반
작성자
결선투표
작성일
2004-06-14 06:00
조회
2533
존경하는 이용대 동지, 무엇보다도 동지가 '속시원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동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새삼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정작 토론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막막합니다. 저 멀리 넓은 강 건너에 있는 동지에게 아무리 고함을 쳐도 들릴 것 같지 않은 그런 기분인 것입니다.



'북 정권이 북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을 단정하는 동지와 무슨 대화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동지에게 되묻습니다. 동지는 북한 정권이 북한 인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지난번 후보 검증 토론회에서는 북한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시더니 그 동안에 북한에 대해 구체적 사실을 더 알게 된 것이 훅시 있습니까? 물론 그런 건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현실,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동지의 머리 속에 있는 관념,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는 '이데아'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야말로 북 정권이 북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지 아닌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나는 다만 북한의 노동자와 인민의 생활이 궁금하고 당간부들의 생활이 궁금했습니다.



북한의 당간부들도 역시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노멘클라투라'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저가 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슬프게도 북한의 당간부 역시 사람이고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민에게 몹쓸짓도 때때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결단코 '북 민중과 유리된 북 정권'이라는 관념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건 없지요. 북한 정권은 북한 인민과 어떤 방식으로든지 연관되어 있겠지요. 다만 나는 사물을 어떤 입장에서,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 볼 것인가를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남한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남한의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바라봅니다. 그런데 북한의 노동자와 인민은 남한의 노동자계급의 '형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현실을 당간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북한의 노동자와 인민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바로 여기서 동지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북한의 정권은 노동자와 인민의 정권인데 북한의 정권이나 당간부와 북한의 노동자와 인민을 구분해서 생각하다니? 이런 생각이신 것입니다.



동지의 그런 생각은 우리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실상들을 정말로 잘 몰랐을 때, 거의 정보가 없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라고는 반공 선전만 있었을 때, 우리가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이데아와 국가사회주의 체제라는 현실을 거의 같은 것으로 사고할 때, 15년 전에 우리들이 흔히 가졌던 생각, 저가 '낡은 사고'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입니다.



오마이뉴스 토론에서 이용대 동지는 허영구 후보의 국가사회주의라는 표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허영구 후보가 북한을 국가사회주의 체제라고 성격 규정한 데 대해서 동지가 이의를 제기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다 봐 줄 수 있어도 이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마무리 발언에서 심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국가사회주의라는 개념마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아니한 이용대 동지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의장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바로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분별 정립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사회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지 아니 하면 민주적 사회주의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의 대립물인 것입니다.



4분의 3세기 동안 전 인류의 3분의 1이 참여한 세계사적 일대 실험이 국가사회주의입니다. 실험이라는 말은 사실 적절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인민대중이 피땀 흘리고 울고 웃었던 그 대 역사, 대 드라마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교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21세기를 좌파로서 살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이전에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 모든 대전제들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이미 그런 재검토를 거친 여러 개념들로 쓰여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학자, 지식인들의 논의 중에서 이미 어느 정도는 합의를 이룬 것들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동지는 나에게서 '북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느낀 것 같습니다. 동지의 입장에서는 그렇겠지요, 그러나 감정의 문제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무엇이 사실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은 고집스럽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객관 사실이야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꽃제비'라는 단어만 사용하여도 동지는 나에게서 '북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말은 북한사회에서 더 흔히 사용되는 말, 구체적 사물, 구체적 사회현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아무 감정도 거기에는 없습니다. 동지는 대답해주십시오, 도대체 '꽃제비'는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저는 지난 10 여년 한겨레신문만 보았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 저는 그렇게 어려운 사정이면서도 온갖 조건을 붙이는 북한 당국, 오히려 한톨이라도 더 지원하려고 북한 당국의 억지와 무리한 요구에 응하고 달래는 남쪽의 민간 지원 단체 실무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기사를 읽을 때 저는 때로 격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 개새기들, 무슨 핑계가 그리 많아, 백성을 수백만 굶기고 있으면서..." 이렇게 속으로 분통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의 하나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50년대의 진보세력이었던 조선로동당도 이제 보수 세력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은 진보이지만 언젠가는 보수가 될 것입니다. 유럽의 신좌파들의 눈에, 급진 생태주의자들의 눈에 집권 사민당들은 보수 세력에 다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조선로동당이 일당 독재로 통치하는 북한에서는 아직 눈에 띄는 정치적 변화는 없습니다. 반면에 50년대만 하더라도 아무 희망도 없을 것 같던 남한에서는 극우파, 냉전 파쇼세력이 민주 세력에 의해 서서히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진보세력이, 특히 민주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등장하였습니다.



전한반도적 차원에서 길게 보면 조선로동당을 대체하는 진보세력이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비록 아직 분단이 끝나지 아니한 상황에서 나타났지만 분단을 넘어, 20세기를 넘어, 통일 이후를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과거지향적으로, 20세기적인 사고 방식, 아니면 그 전으로 돌아가서 한국전쟁 전이나 독립운동 시기에 형성된 관념들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통일 방안에 대해서는 북한이 60년대에 내놓은 고려연방제 제안과 80년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제안의 차이, 그 이후 해석의 변화 등을 다 말하자면 너무 길 것 같습니다. 다만 80년대 이후 북한의 공식입장에서 말은 연방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국제정치학의 공통 용어로 하면 국가연합에 가까운 것이고 그러므로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나는 주체적, 독립적 사고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조선로동당에 대한 독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저도 50년대의 시점에서 조선로동당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진리를 조선로동당이 영원히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조선로동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좌파, 진보정당이 남한에 형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남한의 운동권 중에서 많은 분들이 유엔 동시가입은 분단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하는 것이라고 결사반대한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분단은 이미 고착되어 있는 데 무슨 새삼스런 고착화냐?" 그런데 얼마 후 북한이 입장을 바꾸어 유엔 동시가입을 하자 그 분들이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습니다. '결사반대'는 사라졌습니다.



결국 북한의 외교적 입장, 대남 정책적 입장이 바뀌면 그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는 것은 '내 머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오죽하면 이종석 박사가 한탄하며 한겨레신문에 쓴 글에서 남한의 운동권은 '북한의 대남 정책의 지렛대'라고 하는 동지의 표현대로라면 '극한적인 표현'을 썼겠습니까?



민주노동당은 어느 당으로부터도, 당연히 조선로동당으로부터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주장하고자 했던 바 핵심입니다.



이용대 동지가 말하는 '유일하게 과학적인 통일방안'은 미안하게도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바로 그대로 입니다. 물어봅시다. 한 자라도 동지가 비판적으로 검토를 해서 바꾼 바가 있습니까? 이렇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말하지는 말자는 것이 저의 이용대 동지에 대한 거듭된 충고입니다. 동지가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의장을 맡겠다고 나선 분이 아닙니까?



저는 특별히 동지가 말하는 '체제동일론', 당장 체제를 같이 만들자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이란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그 과정으로서 여러 통일 방안이 있지만 그것은 다 대동소이하다. 결국 평화적으로,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통일로 가자는 것이다. 그에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쉽게 북한 당국과 합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남한의 극우파가 펄쩍펄쩍 뛰었지만 사실은 그 전부터 서로의 (공식)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은 같은 것'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쉽게 합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덧붙여 저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 남한의 민주화와 사회진보가 곧 통일로 가는 길이다.우선 남한에서라도 우리가 노동운동 열심히 해서 통일된 이후에 살고 싶은 나라와 사회를 부분적으로라도 실현하고 만들자. 그것이 남한의 진보정당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상식적인 말이지요?



동지가 제기한 두번째 문제, 저의 '당 관념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청산주의, 패배주의라는 용어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야 말로 옳고그름이 너무나 단순명료했던 항일운동 시기에 많이 쓰이던 언어이지만, 요즘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할 때 로맨스나 불륜과 비슷한 조폭적 언어들 아닙니까?



물론 내가 동지를 골방에서 금방 걸어나온 사람, 운동권 파벌의 골목대장인지는 모르지만 대중정당의 지도자로서는 아직 아닌 사람, 출마도 두어번 해보아서 환골탈태해야 할 사람 취급을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고 그에 대한 감정적 대응으로 별 내용없이 자극적 표현을 동원하시는 것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이제 서로가 자제를 하도록 합시다. 특히 민중운동의 뿌리를 부정한다는 식으로 남의 말을 왜곡하지는 맙시다.



저가 '민주노총당', '운동권당'을 벗어나자고 할 때는 이미 국민의 20퍼센트 가까운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대중정당 답게 우리가 가져왔던 관념들, 사고와 언어와 행동의 습관들을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의 생활과 상식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자는 것입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차차 생각 차이를 극복하면 될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정책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 동지의 말이 왔다갔다 하는 부분, 장상환 전 정책위원장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원 동지들은 어느 후보가 정책위의장이 되는가에 따라 앞으로 정책위의 활동 방향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후보검증토론회로부터 연장된 서로의 정치철학과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정리를 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이용대 동지가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충분히 하십시오. 저는 다 했습니다.



2004.6.9 주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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