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위기?

일반
작성자
허영구
작성일
2004-06-09 15:00
조회
3182
함정? 위기?



한국경제는 위기인가? 그렇다. 위기다. 구체적으로는 가계의 위기이고 노동자 민중의 위기다. 자본주의체제의 위기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 그들은 분명 자본과 자본권력이다. 물론 편승한 수구보수세력들이다. 누가 위기를 조장한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서둘러 가짜위기라 말을 얼버무리며 국민을 기만하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판을 깐 레이거노믹스의 연출자 레이건은 자본언론의 화려한 칭송 속에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제3세계에 대한 침략과 민중들에 대한 공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죽기 훨씬 전에 더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함정(陷穽, trap)에 빠진 '한국의 빈곤'이라 한다. 소득불평등도가 멕시코, 미국에 이어 OECD국가로는 세 번째다.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하위 20% 계층 소득의 8배나 된다니 가히 숨막히는 수준의 격차다. 거기다 각종 자산까지 감안하면 이는 적나라한 폭력사회임을 보여준다. IMF부채위기 이전에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확률이 14.5%, 그 이후에는 20.2%로 증가했다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취약계층 보호정책의 방향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계급적 통계분석이 이 정도라면 실상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IMF직후 한국의 관료들은 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는 멕시코를 배운답시고 서둘러 갔다온 일이 있다. 멕시코가 금융의 유동성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수용해야 했던 IMF프로그램, 정확하게는 미국의 요구대로 경제정책을 편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불평등국가가 되었다. 물론 이를 사주한 미국은 2위이고 한국은 당당히 그 뒤를 따르는 3등이다. 틈만 나면 배우자고 외치는 대처리즘의 나라 영국은 4등이고 노사정 합의 모델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는 아일랜드는 6위다.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것은 자랑스런 일인가?



세계최대의 지역경제권인 나프타(NAFTA: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 세계 GDP의 36.7%)에 포함된 멕시코 민중들의 삶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한국이다. 이제 세계 3위의 지역경제권인 한.중.일 3국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다면 한국이 멕시코를 제치고 1위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우려된다. 세계경제의 기관차라 불리는 미국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인 3천 7백만명이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들이다(비즈니스위크지, 5.31). 의료보험혜택이 전무한 그야말로 빈곤층이다. 21세기 '성장 후 분배'라는 이데올로기 발상지는 미국이다. 한국에는 그 미국의 아류들이 많다.



내친김에 신자유주의 사령부 미국 얘기 좀 더 해보자.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작된 1970년대 중반이래 미국가정의 60%가 실질임금이 정체되었다. 그리고 당시와 비교하여 현재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60시간 증가하였다. 무려 한 달이 더 늘어난 것이다. 공식적으로 의료보험 미납자가 4,500만명이고 보험가입자중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국민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게 믿어지는가? 미국얘기니까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럼 성장의 몫은 어디에 가 있는가? 1980년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공장노동자 평균 임금의 42배였으나 1990년에 85배, 1998년에는 무려 420배로 그 격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벌어지고 있다. 성장 후 분배라고? 아니지. 성장과 성장, 그리고 NO분배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공범자 영국은 어떤가? 전 부문에 걸쳐 황폐화되고 있다. 서유럽에서 최장 노동시간에 처해있는 노동자들과 어린이의 3분의 1이 빈곤선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만들어 놓은 의료제도, 우리와 같은 의료보험제도가 조세에 의한 국가의료제도(NHS)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 싶다. 그럼 종범이라고 할 수 있는 동유럽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모든 부문에서 산출량이 줄어들었고 빈부격차는 확대되었다. 그것의 결정적인 현상은 러시아 남성의 수명이 10년이나 줄었다는 사실이다.



어제(6.8)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중인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연설에서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차별과 불평등이 없는 세계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강조했다. 물론 양대 노총 지도부, 제네바 주재 한국 대사, 경총 회장이 함께 한 자리에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가 아니라 '인간을 탈을 쓴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자본의 탈을 쓴 보수정치인들이 공격적으로 성장 후 분배를 외치며 노동계급에 대해 인내를 강요하고 있다.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이제 노동계급 앞에 천길 낭떠러지와 같은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분명 위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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