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문 기호1번 김미희>김미희의 발자취

일반
작성자
김미희선본
작성일
2004-05-29 17:00
조회
3762
김미희>발자취



대학 2학년 때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실린 전태일열사의 일기를 수첩에 옯겨 적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동료에게 자기 차비로 풀빵을 사 주고 자신은 밤길을 몇 시간 걸어서 퇴근 하는 모습, 고된 노동을 하는 틈틈이 법을 연구하고 동료들을 모아 다양한 방법으로 업주에게 요구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분신을 하실 때까지의 일기를 읽으면서 열사의 인간성에 감동했습니다. 또한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게 되었고 잘못된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뒤늦게 대학 3학년 때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고 약대학생회장으로서 건국대에서 열린 애학투련 집회에 참가하였다가 구속,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짧은 감옥생활이었지만 돈 없고 배경없는 사람만 처벌받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았으며 사람을 교도하자는 곳에서 사람을 동물취급하며 망가뜨리는 범죄를 국가가 저지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에 다시 성남 터사랑청년회에 가입하고 성남중앙병원 약제과에 근무하면서 공장은 아니지만 노동자로서 사회생활을 배웠습니다. 1993년에는 약국을 차리고 주민등록까지 옮겨 단독세대주로서 객지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95년에 청년회원들의 선거운동이 주민들을 감동하게 하여 제가 성남시의회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96년 12월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때 김형찬군이 안기부원들에게 고문받다가 분신한 사건의 대책위원회 대외협력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의회 안에 갇히지 않고 민중 의 요구를 찾아 뛰는 의정활동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IMF사태후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업자대책위 활동

실직자들의 실업의 고통과 어려움을 히결했습니다.

-실직가정 자녀 방과후 학습지도와 무료급식을 하는 푸른학교

-건설노동자 무료취업 알선센타

-범국민결연 생계비지원사업

1997년 IMF 사태는 열심히 일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실업자대책위에서는 이런 민중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실태조사 결과 건설노동자의 대부분이 실업상태였고 그분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생계와 자녀들의 교육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고용안정과 실업자문제 해결을 위한 경기동부실업자대책위원회(약칭 경기동부실대위)'입니다. 저는 공동대표로 참여했습니다.







실직자들이 생활에서 가정 어려운 문제는 생계와 자녀교육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후 실정가정자녀들을 위해 무료로 급식과 학습지도를 하는 푸른학교를 만들었습니다. 1998년 10월 상대원, 태평동, 성남동에 문을 연 푸른학교는 300여명이 넘는 실직가정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삶의 든든한 희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4년 현재 푸른학교는 점점 확대되어 성남 구시가지에 6개(수정구;태평동,수진동,신흥동과 중원구에 상대원,성남동,금광동)의 푸른학교와 분당 정자동 한곳과 용인,서울,청주,공주로 확대되어 총 400여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명실상부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푸른학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1999년 2월 상대원 푸른학교 아이들이 복지회관 공간을 잠시 빌려 쓰다가 쫓겨났던 사건입니다. 넉넉한 재정이 없었던 푸른학교가 복지회관 공간을 빌려쓰다가 강제철거 당한 사건으로 많은 지역 일꾼들이 수배생활을 하는 곡절도 있었습니다. 수배생활하던 어떤 분은 수배의 몸이라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던 사연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그 당시 성남시의 처사가 괘씸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푸른학교의 뜻에 감동해 정말 어려울 때 도와주고 지금도 동생들처럼 푸른학교 아이들을 생각하는 가수 김장훈씨나 푸른학교 재정마련을 위해 김밥을 만들어 팔러다녔던 학부모들과 후원인들의 노력으로 푸른학교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교육의 열풍이 불지만 양질의 교육혜택을 받기 어려운 저소득과 실직가정아이들을 위해 푸른학교는 많이 노력하고 있답니다.

푸른학교는 민주노동당의 무상교육의 정책에 걸맞는 현실의 살아있는 모범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우리 후대들을 키우기 위한 교육사업에 적극적으로 일해볼 생각입니다. 현재는 푸른학교에서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사회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고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위해 2002년 4월부터 지역에 자주여성회를 만들어 부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여성대중들을 위해 자주여성학교라는 것을 열어 문화 정치적인 소양을 갖게하고 친목도 도모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작년에 제 2기 자주여성학교를 마친 자주여성회는 앞으로 지역 여성들을 위한 왕성한 활동을 벌일 것입니다. 작년까지 부회장으로 있었고 현재는 임기가 끝나 자주여성회 산하의 '영화담기'라는 동아리의 대표로 활동해 동아리원들과 영화도 보고 세상이이기도 하고 있지요. 저에게는 새로운 여성들을 많이 알게 되어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여성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기치를 내건 자주여성회 회원여러분들은 저의 든든한 지지자입니다







2003년 7월 인하병원 폐업 뒤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속에서도 인하병원 노조원들이 단결되게 조직적으로 실천하며 성남시민들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감동했습니다.

100여 명 노동자들 모두가 존경스러웠습니다. 노동자의 조직력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를 직접 보았습니다. 그것을 이끌어내는 간부의 헌신과 신념을 보면서 '저런 분들이 참다운 정치가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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