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수노동조합 박정원위원장 신년사
2021년 고등교육과 교수노조의 과제
촛불정부로서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문재인정부의 고등교육개혁은 사실상 끝났습니 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한 사학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공영형 사립대학도 기 재부의 반대로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고등교육재정은 소폭 증가했으 나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교수들의 임금은 동결되고 노동시간은 증가하고 있으 며, 각종 잡무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비리사학의 창궐로 교권과 학습권의 실추가 심각 하지만, 교육부의 방관 속에 제3주기 대학평가로 인해 여러 대학이 폐교 위기에 빠지 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교수노동자들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온 것입니다.
지난해 말,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 입장에 따라 정부와 여당은 노동조 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이 그동안 견지해 온 입장, 즉 해고자와 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있게 관련 법률이 개정 됨으로써 한국노동조합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개정에는 상당한 독소조항도 포함돼 아쉬움도 큰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으로 애초의 정부안보다는 많이 개선된 것이긴 했습니다만.
이번 교원노조법 개정으로 이미 서울행정법원에서 전국교수노동조합에 패소한 노동부 가 행정소송을 지속할 명분은 크게 약화하였습니다. 행정소송에 대한 전망에 따르든 아니면 개정 교원노조법의 시행에 의하든, 올해는 교수노조가 완전 합법화되는 원년 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중대한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 교수노조에 신자유주의적 고등교육정책에 맞설 힘 은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현재, 대학에는 교수노조/국교조/사교조 외에 개별대학 노 조들도 다수 결성되고 있으나 학교별 조합원 수는 대체로 많지 않습니다. 정년트랙과 비정년트랙 간 서로 다른 노조 결성으로 갈등을 빚는가 하면, 한 대학 내에 소규모 노조들이 3~4개 있는 대학도 있습니다. 법인이나 대학 당국으로서는 최선의 상황인 셈입니다. 교수노조는 바로 이러한 분열상을 극복해야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올해 교수노동운동은 다음 몇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과 교권보호에 힘써야 합니다.
대학교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여러 대학에서 책임시수가 증가하고 있고, 임금은 수년째 동결되었습니다. 교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투쟁 이 필요하며, 단체협약 등 합법적 권리에 따른 성과 쟁취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내부 의 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은 오히려 부당한 징계를 당하고 있으며, 일부 사학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과 행정소송의 결과까지도 무시하는 무법천지의 상황이 계 속되고 있습니다. 막가파 법인들과 이들을 방치하는 교육부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투 쟁이 요구됩니다. 또 교육·연구 체계를 어지럽히고, 공적 기금을 부당하게 배분하도록 만드는 로비스트집단 교피아들도 대학에서 추방해야만 공정한 대학사회를 이룰 수 있 습니다.
둘째, 사립학교법 개정 투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문재인정부의 사학비리 척결 의지가 미약하여 사학비리가 창궐하고 있음을 각종 증언 과 보도를 통해서 직접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대 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이사회가 현재보다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이사 중 친인척 비율을 축소하여 족벌운영을 막아야 하는데, 특히 부부나 자식 등 가까운 혈족이 총장과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전근대적 운영구조는 완 전히 타파해야만 합니다. 공익이사 및 개방이사 수의 확대도 필요합니다. 임시이사 파 견요건을 완화하고, 사립학교법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을 규정해야 사학운영의 투명화· 민주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셋째, 비정년트랙교원에 대한 차별철폐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최근 사립대는 물론 국공립대까지 비정년트랙교수 채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정년 트랙교수들은 임금도 낮고 신분이 불안정하여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기 어렵습니다. 연구비 배정, 안식년 부여, 보직 배치, 학생지도 등의 업무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직 장 내 갑질 피해도 상당수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정년트랙교수 채용을 억제하고, 대학별 전체 교원 중 비정년트랙 비중을 대학평가지표에 추가해야 합니다. 궁극적으 로는 교육부와의 단체교섭이나 정책협의 및 대학별 교섭에서 비정년트랙제도 철폐를 주요 의제로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대학교육 무상화에 대한 국민 인식 증진과 대정부 투쟁을 본격화해야 합니다.
대학교육 무상화는 위기에 처한 고등교육 현실을 극복할 방안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교육비 부담 경감과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도 이바지하는 보편적 복지 실현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중저소득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분배에 이바 지하면서 지방대학의 교육여건 개선책이 되어 공공재로서의 대학이 새롭게 서는 중요 한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첫 단계가 바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투쟁입니다. 기재부의 오도된 가치판단에 맞설 수 있는 국민 여론 형성과 정책생산 요구에 주저함 없이 나서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다섯째, 지식인노조의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단결과 연대를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동료집단인 비정규교수(시간강사)의 교육연구여건 개선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대학 노조·대학원생(조교)노조·민주일반노조 등 대학 내에서 함께 ‘노동하는’ 노조 전체와 연대할 때 대학민주화운동이 탄력을 받게 됩니다. 사학개혁운동, 사립학교법 개정운 동, 대학서열타파운동, 고등교육무상화운동 등 교육운동 전선에서 연대가 필요합니다. 모든 생산직·관리직·사무직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하며,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 연구자협의회(민교협) 등 민주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도 강화해야 합니다. 시대적 요구 인 평화통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식인노조로서 시대적 소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021년 정초부터 전국 여러 대학에서 교수노조의 투쟁승리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경성대와 김포대 등에서 부당하게 해직된 조합원들이 복직투쟁에서 승리해 학교로 돌아 가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의 갑질 횡포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임금체계 개편시도 등 은 우리 교수노조 지회의 투쟁으로 분명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단결과 연대, 투쟁이 이루어낸 빛나는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일부 지 회에서 시작한 단체교섭은 올해 점차 전국의 지회 차원으로 확대될 것이며, 이를 성 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이에 앞선 지난해 말, 교수노조 조직실장을 역임한 조형래 동지가 민주노총 경남지역 본부장에 선임되었습니다. 실로 교수노조의 위상을 높이고 앞으로 더 많은 교수노조 조합원들의 활동을 기대하게 합니다.
올해는 이 여세를 높여 교수노조의 활성화로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강행과 사 립대학의 일방적 구조조정 및 교권탄압에 제동이 걸리면서, 고등교육부문에 정의의 물결이 유입되고 새로운 활력이 넘칠 것입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전국 6만 교수노동자들에게 가슴 뛰는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2020. 1. 7.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