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돈 보다 생명을!

일반
작성자
허영구
작성일
1970-01-01 00:00
조회
2879
돈 보다 생명을!



고려대학교 노천극장 무대에 '돈보다 생명을' 이라는 구호가 보건의료노조 투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대상단에는 산별노조 5대요구로 ①의료공공성 강화 ②주5일제 쟁취 ③비정규직 철폐 ④최저 임금제 확보 ⑤노동연대기금을, 무대하단에는 '산별총파업 승리로 새로운 산별의 역사를', '주5일제 쟁취로 새로운 노동운동의 역사를' 요구하고 있다. 원형 계단 뒷면에는 '평등한 의료 평등한 세상', '평등한 노동 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프랭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대운동장에는 전쟁사극에 보여주는 군사 진영처럼 천막들이 질서정연하다. 정말 장관이다. 병원의 곳곳에서 개인으로 존재하던 병원노동자들이 거대한 물결과 흐름을 만들고 있다. 자신감이 넘쳐난다. 더위와 피곤함에 지친 몸이지만 이곳은 분명 해방구임에 틀림없다.



지난 17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숱한 투쟁의 대오들이 이 곳에서 결의를 다지고 진보의 역사, 그 바다로 출정하였다. 파업대오에 참가한 1만여 병원노동자들은 정말 지난 17년동안 기대해 온 산별노조 투쟁의 위대함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 어떤 교육과 선전보다도 산별노조 공동파업은 노동조합의 학교이자 노동계급의 신명과 자신감으로 노동자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거추장스런 그래서 악세사리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동지들과 함께 모여 삶의 지혜를 마음 속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이 세상을 창조하고 또 유지해 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하찮은 존재, 생존의 길목에서 몇 푼의 임금을 벌기 위해 움츠리며 자본 앞에 굴종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인임을 확인하는 파업 현장에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래서 그곳에는 기쁨이 넘친다. 정말 눈물겹도록 인간에 대한 신뢰가 싹튼다. 노동자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 노동자들이 사랑과 믿음이 있어 행복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돈보다 생명을! 지난 17년간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투쟁을 집약시킨 문장이다. 수정처럼 강하고 순결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들이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외치듯이 지금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자본주의세계체제 속에서 노동운동이 나아갈 바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이 주인인 사회(資本)에서 인간(生命)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돈이 주인으로 존재하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 돈이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표가 되는 한 노동해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돈보다 생명이 우선시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돈보다 생명을'구체화하기 위한 제도개혁으로서 의료의 공공성 강화가 실현될 수 없다. 의료자본에 의한 사적의료를 공공의료로 전환하는 투쟁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이는 각론으로 의료제도 개혁에 머무르지 않는다. 총론에 있어 자본주의체제의 극복이다. 극복은 철폐를 의미한다. 이번 보건의료투쟁은 한 단위의 산별노조 요구와 투쟁을 넘어 전체 노동계급의 요구자 투쟁임을 공유해야 한다.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슬로건은 전체 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함께 투쟁하고 쟁취해야 할 과제다. 그러기에 보건의료노조 동지들의 투쟁은 선봉투쟁이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