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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위기와 진짜위기

일반
작성자
허영구
작성일
1970-01-01 00:00
조회
3001
가짜위기와 진짜위기



"과장된 위기론은 시장을 위축시키고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진짜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 17대 개원 국회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말이다. 여기서 과장된 위기는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보수 언론이 퍼뜨리는 위기론이 '가짜'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위기관리는 과장된 위기론을 잠재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가 가짜를 잠재우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현실에 입각하여 내심으로는 경제문제보다는 언론개혁을 염두에 둔 발언처럼 들린다.



여하튼 노무현식 한국경제는 올해 예상되는 흑자 200억 달러와 세계 4위를 기록하는 1,6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라는 거시경제지표로 볼 때 건실하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농촌경제의 파탄, 수백만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60%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10%가 넘는 실질 실업률, 외국자본에 의한 대기업 장악과 중소기업의 몰락, 빈부격차 확대 등은 이미 한국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고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다. 그것은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하다. 물론 조.중.동의 경제위기론이 자본의 본질적 문제를 통해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정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할 일이다.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만 하더라도 그 직전까지도 낙관론이 지배하였다. 이는 분명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내재된 구조적 공황 가능성을 도외시한 결과였다는 것이 그 후의 평가다. J.K.갈브레이드는 당시의 재앙을 가져 온 5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 소득의 악(惡)분배, 둘째, 나쁜 회사 조직, 셋째, 나쁜 은행 조직, 넷째, 불안한 국제수지, 다섯째, 빈약한 상태의 경제적 지식을 꼽고 있다. 사실 좋은 회사나 좋은 은행이 있다고 공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은행과 회사의 기준이 무엇인가도 계급적으로는 그 개념규정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공황을 가져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거시경제지표로 볼 때 수출에는 문제가 없으나 소비와 투자가 문제라고 한다. 소비가 위축되는 이유는 분배의 불균형과 경기 전망이 불투명함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불경기나 경기의 위축을 주로 소비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본질, 특히 자본주의경제위기의 본질은 그 생산양식에 의해 내재된 문제이다. 말하자면 생산력과 생산의 사회적 관계 때문이라는 점이다. 필요비용 이상의 초과분인 사회적 잉여를 소수의 집단인 자본가들이 전유(專有)한다. 그래서 광범위한 소비자인 민중들은 소비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본가가 원래부터 생산물을 독점하는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경쟁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체제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과잉생산과 그에 따라 파생되는 여러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다. 재고, 임금체불, 노동자 실업, 자본의 수익성 악화, 부도 등으로 이어지고 위기가 확산된다. 자본주의체제의 시장문제는 공황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의 수구보수언론들이 이런 자본의 본질적인 위기를 간파하고 위기를 퍼뜨렸다면 아주 잘 한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신화에 도취된 그들이 대공황 직전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빈약한 지식으로 위기를 주장했다고는 도저히 보여지지 않는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간파하지 못하고 그냥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것은 이미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그의 용감한(?) 경제정책에서 드러나고 있다. 진짜와 가짜 논쟁의 두 당사자는 사실 둘 다 가짜다. 항상적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는 한 정권의 발목을 잡는 자본언론이나 역시 정권투쟁의 연장선에서 성질이나 돋우는 대통령 역시 진짜가 아니다. 자본주의 진짜위기는 지금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은 너무나 처참하다. 이라크만이 전쟁상태가 아니다. 한반도는 지금 자본의 침략전쟁으로 노동이 죽고 다치고 신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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