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평2024-17] "대학생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로 발간합니다.
대학생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남정희(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대전대학교)
“노조가 있으면 기업과 경제가 망한다. 노조를 계약직으로 전환하라.”
지난 9월 9일 회의에 참석하려고 민주노총 경기본부로 가는 길이었다. 위의 글귀는 경기일보·한일타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기다리다가 보게 되었다. 길 건너편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 커다랗게 써있었다. 노조혐오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글귀가 큰길에 버젓이 걸려 있을 수 있다니, 잘못 보았나 하고 눈을 껌뻑이며 다시 읽어 보았다. ○○당 대표 ○○○라고 실명도 당당하게 내걸려 있었다.
4년 전에 노동청에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30년간 노동청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1주일 앞둔 근로감독관과 상담하게 되었다. 그는 30년 전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노동자들이 정말 불쌍하였지만, 지금은 노동자가 너무 무섭다고 하였다. 정년퇴직 후 장사를 해보고 싶은데, 노동자를 고용할 생각을 하니 도저히 사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시간이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을 묻지 못한 채, ‘30년간 노동청에서 근로감독관으로 일한 사람이 해도 되는 말이야?’고 생각하고는 의아해하며 노동청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 불쾌감을 느끼며 노동청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지만, 물론 그 후로도 나는 자주 노동청을 방문하여 도움을 받았다.
‘갑질’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에는 없는 말이라 ‘gapjil’이라고 영어사전에 오른,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40여 년 교육노동자로 살아왔는데, 12년의 교사 시절에는 없던 차별을 대학에서 당하였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법과 제도로 교원을 착취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국가가 노동자에게 갑질하는 것이다. 나는 30년간 대학의 교원으로 노동하며 서러움과 분노를 자주 경험하였다. 십 년간 대학에서 전업강사로 일하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았다. 2006년 비정년 교원으로 임용되어서는 동일노동을 하지만 입직 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정년교원의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고, 과도한 수업시수를 맡으라는 압력에 시달려왔다. 심지어 비정년 교원은 6년간 일하면 자동퇴직이라는 취업규칙 때문에, 임용 후 6년이 지나 자동으로 퇴직당하였다. 4년 6개월간 법적 투쟁을 거쳐 겨우 다시 근무하게 되었지만, 복직하고 나서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며 누구와 점심을 함께 먹는지도 감시당한 적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노조 간부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나는 이제 ‘을질’이라는 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을이 갑에게 “호령하거나 자신의 방침에 따르게 하는 짓”이라고 국어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을들이 있다고 한다. 노조가 을질을 돕는 일이 일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노조원이 억울함을 호소해오면 상부에서는 진상조사를 하게 된다. 부당함이 있으면 사업주에게 시정을 요구하고, 노조원이 시위에 나서면 지원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노동청에 신고하거나 법적인 절차를 밟도록 돕는다. 그런데 어떤 노조는 진상조사에 소홀한 채 노조원의 피해 호소를 그대로 받아 적어서 사업주에게 보내기도 한단다. 여기서 노동자가 무섭다거나 노조를 혐오하는 발언이 싹트는 게 아닐까? 노조는 부당하게 상대를 겁박하는 ‘해결사’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노조에서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 조합원 수가 바로 그 노조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조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조원의 위세가 도를 넘기도 한다. 어떤 노조원은 본부에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여 돕는 것에 반대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러한 연대활동이 싫다며 탈퇴하여 개별 단위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노조가입을 보험가입으로 비유하는 조합원도 있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후 접촉사고가 나면 보험회사에서 모두 해결해 주듯이, 대학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면 본부가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묻는다. 본인이 직접 싸워야 하고 노조는 지원하겠다고 말하면, 화를 낸다. 자판기에 돈을 넣었다가 물품이 나오지 않으면 자판기가 고장 났다고 손으로 두드리고 발로 차듯이, 노조가 조합비만 받고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노조가 약자와 연대하는 운동성이 약해지고 자신들의 권익만 추구하면, ‘해결사’로 전락할 수 있다.
‘갑질’과 ‘을질’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교육하자. 대학생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를 공부하게 하자. 독일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모의 노사관계 놀이를 한다고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적이면서도 공동운명적인 관계”를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학습해 보는 것이다. 우리 형편에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지자체에서는 사업비를 책정하여 이미 6년째 대학생들에게 노동인권을 교육하고 있다.
지난 8월 27일 오후 2시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학생 노동인권 사업의 성과와 발전방안”에 관한 워크숍이 열렸기 때문이다. 2019년 2개의 대학에서 교양강좌로 시작하였으나, 2023년엔 14개 대학에서 교양강좌나 특강을 시행하고 있었다. 노동인권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이 나와서 수강 전후 자기가 어떻게 변하였는지 발표하였다. 강좌를 개설하여 수업한 교수들이 나와서 사례연구를 발표하였다. 대학생들은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갑도 되고 을도 된다. 수업 시간에 갑도 되어 보고 을도 되어 보면서 노사교섭을 실제로 해보면, 노동인권에 대한 다양한 식견이 쌓이지 않겠는가? 다른 지자체도 와서 발표를 듣고 있었는데, 경기도의회를 배워 전국에서 대학생 노동인권 교육이 활발히 전개되기를 바란다.(끝)
2024년 11월 12일
전/국/교/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