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평2024-16] "글로컬대학 30 유감(遺憾), ‘글로컬 30’을 중단하고 광역 ‘글로벌 지역대학연합(GCUs)’의 선진적 대학균형발전 국가전략을!!"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로 발간합니다.
글로컬대학 30 유감(遺憾), ‘글로컬 30’을 중단하고 광역 ‘글로벌 지역대학연합(GCUs)’의 선진적 대학균형발전 국가전략을!!
송주명 (한신대학교)
지난 9월초 전국교수연대회의의 행사 차 지역의 모 국립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대학 교문에 붙어있는 인상적인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OO 대학교 글로컬 30 지정을 축하합니다. OO 대학교 신임교수모임” 지난 학기에 임용된 신임교수들이 이 대학의 글로컬대학 지정을 축하하며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학의 선배 교수들도 대체로 선정되지 못한 것보다 선정되는 쪽이 나은 것 아니냐고 긍정적인 반응이다. 학령인구의 반감이 예상되는 초 위기적 상황에서 지역의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형국이다. 이런 마당에 윤석열 정권이 던진 글로컬대학의 ‘사탕’이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정되면 5년간 총 1000억 원을 주겠다는데,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글로컬대학 30 사업이 시작된 지 1년을 넘어서 2년을 맞이하고 있다. 2023년 10개 대학(프로젝트)에 이어, 올해 신규로 10개 대학(프로젝트)이 지정되었다. 그러나 교육부의 말, 그리고 지역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글로컬 30 정책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그 문제점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연 이 정책이 최소한도 나마 ‘일관성’과 ‘실행력’을 갖춘 공신력 있는 정부 정책인지를 의심할 정도다.
무엇보다 이 정책은 지역대학의 글로벌한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취지를 갖고 있었지만, 고등교육을 향한 국가전략 기준은 실종된 채 예산뿌리기 ‘초 경쟁’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국적인 전략적 조화나 균형은 상실한 채, 각 대학, 혹은 연합 주체들이 내세우는 ‘아름다운 그림’, 그러나 실현가능성은 엄격히 따져지지 못한 자극적인 프로젝트들이 난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컬대학은 일부 지역에 편중됨은 물론, 충남대학, 전남대학 등 몇몇 거점국립대학은 지금까지도 배제되고 있다. 무언가 정치적 선별 기준이 작동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떨칠 수 없는 대목이다. 고등교육의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국책사업’이 국가전략 없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셈이다.
둘째, 글로컬 30 정책은 ‘대학의 경쟁력’ 향상을 명분 삼아 엄격한 구조조정과 특화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지정된 대학들은 그 지역을 나름대로 대표하는 종합대학들이지만, 인문학과 기초학문을 대폭 축소하고 특화된 전문영역이나, 실용적 학문, 첨단학문 쪽이 비대칭적으로 과대 성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종합대학들의 잠재력과 궁극적 경쟁력의 원천인 총체적인 학문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학문 및 연구 공동체로서 대학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글로컬 30 정책은 중장기적 시야에서 각 지역 대학들의 연구 및 교육 경쟁력의 기반을 도리어 심각하게 침식시키는 모순을 갖고 있다.
셋째, 글로컬 30 정책이 갖고 있는 예산 혹은 재정적인 측면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글로컬 30 예산은 법적인 뒷받침 없이 그 출처와 근거가 불명확하다. 보도에 따르면 글로컬대학 2년차 대학들의 경우, 지난해 200억의 예산이 주어져야 하지만 대학들은 평균 41억 정도만을 지원받았다. 2년차 지원금도 24년 9월 현재 한푼도 지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반기에 지원될 것이라 하지만 그 예산으로 2년차 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투성이다. 나아가 교육부는 글로컬 예산이 독자적인지, 이른바 RISE 사업의 일환인지 불명료하게 함으로써 이 사업의 미래를 흐리고 있다. 글로컬 30이 라이즈사업의 일환이라면 지금까지 지정된 대학들은 모두 광역 시도지사들의 정치적 컨트롤 아래 놓이는 위험성을 갖게 될 것이다. 대학 현장에서 이 사업이 윤 정권 잔여임기 3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미래는 모르겠고, 일단 돈은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는 묘한 ‘무책임성’의 심리조차 떠돈다. 이렇게 되어서야 제출된 계획이 올바로 실천되고 실현될 리 만무하다. 그리고 대학 현장에서는 이 예산이 정작 중요한 중장기적 대학혁신에는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글로컬은 일반예산이 아니라 특수한 프로젝트 사업비여서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는 데 정작 중요한 교원충원에는 돈을 쓸 수 없다. 글로컬 예산은 어느 짝에도 쓰기 어려운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넷째, 글로컬대학은 지역대학 생태계와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대학 혹은 소수의 대학연합들에 대한 고립된 지원방식을 취하고 있다. 글로컬은 선정된 대학이나 연합프로젝트에 한정해 지원이 이루어질 뿐, 이들 대학이 지역대학 전반의 연구 및 교육역량 강화나 공공적 구조전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관심 밖이다. 설혹 1000억이라는 거액이 주어지더라도 이 돈은 지역대학들이나 지역사회의 발전에 대해서는 거의 확산효과(spill-over effect)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사립 ‘글로컬’ 대학의 경우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역의 사립대학들은 버티기 힘든 거대한 구조조정의 광풍에 내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학은 지역사회의 핵심적 공공적, 문화적 자산이기에, 부패한 사학법인의 ‘먹튀’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정리되어서는 안 되며, 지역(시민)사회의 공공적, 민주적 교육문화 자산으로 거듭나는 공공적 구조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듯 지역 사립대학들의 공공적 구조개혁을 지원, 촉진하고 네트워킹할 허브대학 또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정된 사립대학들의 면모를 보면, 가진 사립대학들에게 더욱 ‘특혜’를 몰아주는 식에 가깝다. 이러한 사립 ‘글로컬대학’들은 자신들의 탄탄한 재정사정에 정부자금까지 합하여 스스로만의 이익을 추구하려 들 것이지, 지역내부의 위기에 빠진 사립대학들을 포용하고 지원하는 책무성을 발휘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다섯째,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의 내부구성원, 특히 교수들 간에 합의의 불충분성 또한 이 사업의 중차대한 한계다. 원래 상정된 글로컬대학의 목적이 그나마 충족되려면, 학내 구성원 간에 전략(비전, 목표, 과정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 및 동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실행할 일관되고 통합된 실천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내 ‘집행부’ 혹은 특정 ‘연구팀’에 의해 작성된 계획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전파, 설명되고, 더 나아가 특화 계획에 따라 발생할 재편성 및 구조조정의 비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되고 동의를 얻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학 간 연합프로젝트로 글로컬대학이 추진될 경우, 대학과 대학 간, 그리고 대학 집행부와 구성원 간, 대학 구성원 간의 소통과 합의가 매우 중요할 터인데 충분한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칫하면 글로컬대학의 계획 그 자체가 그림만 존재할 뿐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끝날 가능성마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글로컬 30이 부분적으로 ‘수선(修善)’해 다시 쓰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년도까지 글로컬 30이 지속된다고 한들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며, 정책실패의 파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도,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교육부 관료들도 지지 않는다. 정책실패의 파장은 오롯이 대학 공동체가 떠안아야 할 것이며, 교육과 연구 생태계에도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內傷)과 트라우마가 남게 될 것이다. 대학공동체의 황폐화를 최소화할 방법은 다름 아닌 글로컬 30 정책을 조금이라도 일찍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산을 일반 대학재정지원으로 과감히 전환해 지역의 건강한 대학들이 중장기적 호흡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급선무는 글로컬대학 30 사업의 근본적인 약점을 극복하면서, 학령인구 급감 및 지역소멸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다중심적인 대학균형발전을 이끌 선진적 고등교육 국가전략을 만드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비전략적이고 경쟁적인 접근을 특징으로 하는 ‘글로컬대학 30’이 아니라, 국가전략적으로 핵심적 지역대학집단을 성장시키는 ‘글로벌 지역대학연합(GCUs)’ 전략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GCUs란 광역시도별로 조직되는 핵심적 국립-사립 대학연합을 기반으로 전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공동체로 성장해 갈 ‘글로벌한 지역대학연합(Global Confederative Local Universities)’을 의미한다. GCUs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서울권역 편중의 고등교육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고, 우리 고등교육의 다중심적 균형발전과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대학을 적극적으로 육성해갈 수 있다. GCUs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서울권역 주요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에 해당되는 예산을 ‘특별사업예산’이 아니라 ‘일반재정’으로 투입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고등교육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나아가 각 (초)광역별 GCUs의 균형적이고 전략적인 발전을 위해 고등교육의 민주적 거버넌스 체계로서 ‘국가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고등교육위원회는 지역균형발전위원회와 협력하여 대학균형발전 및 지역상생 대학지원생태계 등 고등교육 국가전략을 적극적으로 수립, 운용해야 한다.
GCUs는 광역자치체 내부의 중추적 국립대 3~4개와 건전한 사립대/전문대 3~4개 등 지역 내 핵심대학 6~8개를 ‘대학연합’으로 구성한다. 이 GCUs는 지역 내 대학의 연구 및 교육활동의 허브역할을 하면서 대학혁신의 성과를 확산하고 사립대학들의 공공적 구조개혁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마디로 지역대학의 혁신과 질적 발전을 주도할 중추적 대학들의 연합체인 것이다. 거점국립대(인문학, 기초학문, 첨단학문)와 지역국립대(인문학, 기초학문, 지역특화), 그리고 사립대(교양, 시민사회 및 지역 특화, 고등직업교육)가 서로 역할분담과 협업을 통해서 대학공동체의 종합적 학문생태계를 발전시키고, 그 위에서 첨단학문과 지역 맞춤형 특화 및 전문화를 추구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서 광역 혹은 초 광역별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공동체(GCUs)를 형성함은 물론, 그 중추적 리더십을 통해 지역 사립대학 및 전문대학을 혁신하고 공공적으로 구조개혁해 나갈 역동적인 지역 고등교육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은 일거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인구절벽과 지역소멸의 시대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 및 새로운 문화 강국의 길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주목하고 살려내야 할 곳이 바로 지역대학들이다. 지역대학연합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들과 함께 이를 성공시킬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끝)
2024년 10월 10일
전/국/교/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