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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2024-08] ‘인공지능과 노동의 문제’

작성자
교육선전실
작성일
2024-05-29 08:43
조회
308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에 발간합니다.


'인공지능과 노동의 문제'

 

이도흠(한양대학교)


 생성형 인공지능의 놀라운 효과와 인류 멸망까지 도래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요새 세간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자신이 조각한 여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바꾼 그리스의 피그말리온(Pygmalion)에서 비롯하여 사람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갖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는 인류의 영원한 꿈이었다. 이제 그 꿈이 달성될 문턱에 왔다. 인공지능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상상 이상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것들이 난제나 쟁점으로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이 지면에서는 노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인공지능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인가, 아니면 억압과 소외를 더 심화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자신하였던 고도의 숙련노동과 예술의 창작에서도 이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책들을 보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을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 수준에서도 예술가, 판사, 심판, 성직자 등을 훌륭하게 대체할 수 있다. 국제 로봇연맹(IFR)이 올해 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 한국에서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1,012대 비율로 일자리를 대체하였다. 여러 해째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이는 이중성을 갖는다. 인간이 하기 어렵고 위험한 일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하고 인간을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침체와 불황의 상황에서는 이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자 로봇과 인공지능이 생산해서 발생하는 이윤을 이의 소유주가 독점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다.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고스트워크(ghost work)가 새로운 노동으로 출현하고 있다. “(유령노동자들은) 지금 조앤이란 여성이 아마존닷컴이 운영하는 엠터크에서 음경 사진을 거르는 일을 매일 10시간씩 수행하고 40달러를 버는 것처럼,”(메리 그레이 외,고스트 워크) 법적 지위도, 조합도 없이 임시직으로 인공지능이 작업을 하다가 알고리즘의 한계나 작업상 결함으로 발생하는 부수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보조 노동을 최저임금 이하의 헐값에 수행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유령노동자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운동단체도 이를 방관하고 있는데, 그레이의 예측대로 머지않아 수억 명의 노동자들이 유령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노동운동을 무력화한다.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할수록 노동자가 노동 거부로 자본에 저항하는 일은 어려워진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노동 거부로 맞서면 이제까지는 자본이 마지못하여 협상에 나서거나 양보했지만, 앞으로는 자본이 그 자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다수가 쓸모없는 자로 전락한 데 더하여 파편화하기에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들을 무시해도 자본의 이윤 창출에는 별다른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는 변화된 조건에서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다.

 지금부터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인류 사회가 로봇봉건제 사회로 퇴행할 수도 있다. 21세기에는 로봇이 숙련 노동자와 반복 작업을 거의 모두 대체할 것인데, 로봇의 생산성은 인간보다 수십에서 수천 배에 이른다. 로봇을 매개로 생산한 가치는 로봇 소유주가 독점한다. 이는 노동시장을 전면적으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노동을 기계의 작동으로 대체하며 노동의 종말을 부른다. 지금도 상위 10%가 절반의 소득, 70% 이상의 자산을 독점하고 있는데 앞으로 0.00001%의 로봇 소유주와 플랫폼 기업 소유자, 알고리즘 제작자가 90% 이상의 가치를 독점할 것이다. 이 경우 영주-기사-농노의 관계처럼 로봇소유주-로봇-노동자의 관계가 성립되고, 노동자는 로봇을 보조하는 자로, 로봇의 매개를 통해 로봇 소유주에게 철저히 착취당하고 자유를 통제당하는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정녕 디스토피아다.

 반대로 인공지능이 모든 노동자가 꿈꾸던 해방의 노동을 구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달성되려면 지금부터 판을 잘 구성해야 한다. 핵심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로봇을 공유부(common wealth)로 삼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관련된 기술은 로봇공학, 컴퓨터공학, 생명공학, 뇌과학, 빅데이터를 종합한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축적되고 융합된 것이기에, 이 기술은 사회의 소산이며 개인이나 기업이 독점할 수 없다. 사회화하지 않은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세나 로봇세를 부과한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합의를 거쳐서 로봇 단독의 노동, 인간과 로봇의 협업, 인간만의 노동의 범주와 직종을 결정하고 이를 법적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하여 단순한 반복 작업과 위험도가 높은 작업은 로봇에 맡기고 인간은 수렵시대의 사람처럼 주당 20시간 이하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남는 시간은 여가를 즐긴다. 노동 또한 아이들이 모래성을 짓는 것처럼 일과 놀이, 예술이 결합한 노동으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노동을 통하여 진정한 자기실현을 하며, 이것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노동하며 행위자가 늘 창의성을 구현하며, 거기서 창출한 잉여가치는 착취당함이 없이 자신과 사회의 몫으로 한다. 이 경우, 인류는 착취가 없이 해방된 노동, 진정한 자기실현을 이룩하는 살아있는 노동, 억압받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는 노동으로서 소극적 자유, 노동을 통하여 이 세계를 개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진정한 자기실현을 하며 자신의 본성을 구현하는 실천으로서 적극적 자유, 생산한 잉여가치를 타자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투여하는 데서 얻는 대자적 자유를 구현하는 노동, 일과 놀이와 예술의 종합을 이루는 노동을 달성할 수 있다. 꿈같은 이야기라고? 지금부터 인공지능과 로봇의 사회화를 향하여 우리의 역량과 현실에 따라 한 걸음씩 정거장을 점유하는 운동을 하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이 칼럼은 필자의 졸저,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중 한 장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