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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2024-10] 다시 한번 교수들의 용기 있는 실천이 필요할 때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
2024-06-24 13:50
조회
543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에 발간합니다.



다시 한번 교수들의 용기 있는 실천이 필요할 때

박정원(상지대학교 명예교수, 경제학)


  교수들의 조직적인 민주화운동 참여는 19876월 시민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시작되었다. 이해 8, 뜻있는 교수들이 모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약칭, 민교협)를 결성하였다. 민교협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을 뚫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사회 민중의 생존권투쟁과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 노력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분단 조국의 지식인으로서 군사정권의 폭정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조차 하지 못했던 교수들의 자기 각성이었다. 사회 각 부문에서 민주화를 추구하는 단체들이 결성되고, 이 단체들의 활동이 활성화되는 데 민교협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전교조 조합원 탄압 국면에도 함께 싸웠고,공무원노조 결성을 위해서도 힘을 보태었다

  

  교육민주화 역시 민교협의 주요한 목표였다. 민교협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여러 대학에 교수협의회가 결성됐고, 운영 주체에 따라 다시 사교련과 국교협을 결성하여 민교협과 연대를 형성했다. 당시 많은 사립대학 재단이 대학을 개인기업처럼 운영하고 있었고, 재단이사장의 권력은 교수와 직원 채용·승진과 재임용·재정 운용·건물과 시설물 건축 개입·학생 자치활동 억압 등 대학 운영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사들을 자신의 친인척들로 구성하고, 총장과 보직교수들도 마음대로 임명했다. 많은 사학법인이 정상적으로 이사회를 열지 않고, 가끔 회의를 개최했어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등 사학은 온통 비리의 온상이었다. 이사장의 비리를 지적하거나 이에 대해 항의하는 교수는 가차 없이 쫓겨났다. 교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는, 참으로 비참하고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민교협과 사교련은 이를 개혁하기 위해 1988년부터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에 들어갔다. 그 주요 내용은 교수협의회의 법적 지위 인정, 이사 중 친인척 비율 축소,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 총장의 대학운영 권한 강화 등이었다. 여기에 많은 대학의 교수들이 참여하면서 일부 대학에서 사학민주화투쟁이 시작됐다. 조선대, 동의대, 상지대, 대구대, 인천대 등에서 시작된 사학민주화투쟁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 덕성여대, 세종대, 목원대, 영남대, 수원대, 청주대, 서원대, 광운대, 건국대, 동국대, 경기대, 호남대, 광주예술대, 한려대, 대구예술대, 안산공대, 경성대, 성신여대, 동해대(한중대), 등에서 교수들의 투쟁이 일어났다.

 

  상지대에서는 교수협의회와 총학이 본관을 점거한 채 1년여 동안 철야농성을 벌였다. 교수와 학생800여 명이 함께 종로, 광화문, 명동, 여의도 등에서 시민들에게 성명서를 나누어주고 집회를 했다. 시위 도중 강제로 끌려가 낯선 곳에 버려지기도 했고, 교수 30여 명이 경찰서에 연행되어 밤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연대투쟁으로 1992년 정기 국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이 됐다. 이렇게 해도 교육부나 검찰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교수 수십 명이 단식으로 맞섰다. 대표를 비롯한 여러 교수들이 고소·고발되어도 교협은 물러나지 않고 싸웠다. 전국의 여론형성층에게 대학의 파행 운영 상황을 알리는 유인물을 여러 차례 보냈다. 드디어 상지대 문제를 모르는 국민이 없게 됐고, 권력은 더 이상 모른척할 수 없게 됐다. 김문기 이사장의 대학운영에 대한 보도가 보수와 진보언론 전체에서 한 달 정도 이어졌고, 결국 3선의 집권당 의원인 이사장이 구속되고 대학엔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전국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투쟁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대학에는 결국 임시 이사가 파견되었으며 대학이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상지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귀를 꾀하는 구재단과 줄기차게 싸워야 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200111월에는 드디어 전국교수노동조합이 결성됐고, 조합원들에 의한 현장 투쟁이 전국 차원으로 결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의 전개에 불안감을 느낀 교육부와 국회의원들의 담합으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약칭, 사분위)가 신설되고, ‘임시이사의 파견임시이사 파견대학의 정상화권한을 교육부에서 이 위원회로 이관하면서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위원회를 사실상 조종하면서도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난 교육부의 소위 민주대학 흔들기가 시작된 것이다. 사분위는 대학의 공익성 확보는 외면한 채, 법인들이 주장하는 사학의 자율성(실제로는 재단의 자율성)에 무게를 두고 운영되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민주대학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임시이사 파견대학들에 다시 비리로 물러났던 재단들을 대거 복귀시켰다. 복귀한 구재단의 변치 않는 태도를 보면 분노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대학이 영리기업만도 못하게 운영되는가!

 

  최근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원대학교의 비리재단이 대학 운영에 복귀했다. 이 대학은 과거 의식 있는 교수들이 해직을 각오하고 싸웠고, 실제로 여러 교수가 해직됐다. 그런데도 이 대학의 일부 교수들은 해직됐던 동료 교수가 승소하여 복직하게 되자 이에 반대하는 문서에 서명까지 했다.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현재, 영남대, 경성대, 평택대, 중부대, 초당대, 계원예술대, 대림대, 청암대, 한국폴리텍대학, 한일장신대 등에서 사학민주화를 위한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학들에도 투쟁하는 동료와 함께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는 교수들이 많다. 억울하게 해직됐다 복직한 교수가 자신을 쫓아냈던 자를 위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교수가 대학의 비리에 대해 알고도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다. 수사당국은 열심히 싸우는 자만을 살펴보며, 감독기관도 싸우지 않는 자들의 주장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지금도 전국 여러 사립대학에서 후진국형 비리가 발생하고 있으며, 사학재단과 관료들의 유착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암흑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비리를 용인하지 못하는 교수들이 있고, 그 곁에는 민주노총 전국교수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이다. 사학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용기 있는 교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싸우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당당하게 일어나서 싸우는 용기 있는 교수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