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평2024-13] 교수논평_좌파 지식인 멸종 시대의 유감
[교수논평]은 2020년 10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매월 1주와 3주에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사회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기 발행되어 왔습니다. 2024년부터 [교수논평]은 이 시대의 사회 이슈와 교육 현안 등에 대해 전문 논평인들의 논평을 격주로 발간합니다.
좌파 지식인 멸종 시대의 유감
이도흠(한양대학교)
서울대는 올해 2학기부터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등 맑스 경제학 강의를 모두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고(故) 김수행 교수가 2008년 정년 퇴임한 이후 겨우 이어져 온 좌파 경제학의 맥이 아예 끊어진 것이다. 이제 대학생이 정규 교과과정에서 이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곳은 경상대, 경북대, 동아대, 성공회대, 충남대, 한신대 등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서울대 경제학부는 37명이나 되는 주류 경제학 교수들이 있음에도 단 1명의 좌파 교수 임용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아직까지도 김수행 교수의 후임을 뽑지 않았다. 정치외교학부도 2013년에 퇴임한 김세균 교수의 후임을 임용하지 않았다. 강좌가 사라지면 학생들이 좌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강좌를 운영하는 학자와 그것이라도 바라고 학문을 탐구하던 연구자들도 사라진다. 학문과 대학의 분명한 퇴행이다. 이는 그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맑스주의 지식인은 어느덧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40년이나 지속되면서 진보를 표방하던 학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체제나 민주당에 투항하거나 포섭되었다. 좌파 지식인이 기후위기와 서식처 파괴로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과 유사한 신세가 되었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도 진보가 자주 집권하는데 우리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분단 상황과 대미 종속 체제에서 모든 진보적 담론이나 주장을 ‘빨갱이/종북’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배제하는 지배층의 전략이 먹힌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40년을 지나면서 “부자 되세요”라는 참으로 천박한 광고가 인기를 얻을 정도로 대중들은 신자유주의적 탐욕, 곧 경쟁심과 이기심, 화폐증식의 욕망을 점점 내면화하였고 노동자들도 이에 편승하여 ‘자본가적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보수 양당이 권력과 가치, 정보를 양분하며 적대적 공존을 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기득권이면서도 진보정당의 탈을 쓰고 진보적 지지와 담론, 정책을 빼앗아 가고 있다. 좌파의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파 미국 박사들이 한국 대학을 장악하였다. 물론, 이런 객관적 요인과 더불어 좌파도 성찰할 지점이 많다.
존 스튜어트 밀은 사상과 표현 및 언론의 자유의 근간이 된 저서인 『자유론』에서 “전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한 사람만이 그에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을지라도 인류에겐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킬 권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좌파 학문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이 세계를, 사건을, 사안을, 정책을 우파의 시선과 입장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진리란 그 자체로 진리인 것이 아니라 허위와 토론과 담론투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이는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가 진리와 허위를 판별할 과정과 능력을 상실함을 뜻한다. 확증편향과 반향실효과,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에 의한 조작으로 갈라치기와 팬덤만이 난무하는 상황이기에, 좌파적 관점은 공론장 복원의 전제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 이 체제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계급갈등, 불평등, 소외를 심화하며, 모든 이들이 물신주의와 화폐증식의 욕망을 추구하게 하고 이기심과 경쟁심을 조장한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불평등의 극대화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환경위기, 패권의 변화와 전쟁의 위기, 인공지능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과 노동과 인류문명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위기, 간헐적 팬데믹의 위기 등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데, 근본 원인을 추적하면 모두 한계에 이른 자본주의 체제가 부문별로 나타난 양상이다. 그러기에 대안은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었을 뿐,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는 최고의 과학으로서, 이의 대안과 비전으로서 맑스주의는 유용하다. 선분실험에서 드러난 대로, 3명이 모이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을 할 수 있다. 진부함과 효용성이 점령한 대학을 진리탐구의 실천도량으로 되돌리기 위해, 종점으로 치닫는 이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남은 좌파 지식인이 깃발을 들 때다. (끝)
2024년 8월 13일
전/국/교/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