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평 2] 고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사학의 족벌경영 2020.10.12

작성자
kpu
작성일
2020-10-15 09:00
조회
1173

전국교수노동조합에서는 10월부터 매주 월요일 [교수논평]을 발행하여 대학과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을 통해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정책 수립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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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사학의 족벌경영


 


족벌경영! 2016107, 국정감사 당시 박경미 국회 교육위원(현 청와대 교육비서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학 284개 법인 가운데 67.3%191개 학교 법인에서 설립자나 이사장 등 임원의 친인척들이 채용돼 있었다. 친인척 고용은 일반대학 법인 149개 가운데 90(60.4%), 전문대학 법인 103개 가운데 84(81.6%)에 이른다.


대학은 매년 상당한 규모의 국비를 지원받는 공익기관인데 사기업처럼 운영되다니... 납세자들은 분노했고, 당연히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 등 개선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4년이 지난 2020107, 아들·며느리·손자가 이사장·총장'그들만의 가족경영'라는 뉴스가 보도됐다(SBS 뉴스). 이번엔 윤영덕 국회의원이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자료를 제출한 247개 법인 가운데 친인척이 근무하는 곳은 163개로 전체의 66.0%를 차지했다. 이를 다시 분류하면, 4년제 일반대학 법인은 148곳 중 82(55.4%), 전문대학 법인은 99곳 중 81(81.8%)에서 친인척이 채용돼 있었다.


 


전국 사립대학(전문대 포함) 총장 68, 부총장 10, 교수 147, 직원 100, 기타 11명 등 총 336명이 설립자 또는 이사장·이사와 친인척 관계에 있으면서 현직에 고용돼 있었다. 4년 동안 일반대학에서는 친인척 고용비율이 약간 낮아졌지만, 전문대학에선 이 비율이 미세하지만 오히려 높아졌다.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이자 K-방역으로 성공한 나라,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대학이 맞는지 의문이다.


 


사립대학 이사장이나 설립자의 친인척들이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불공정은 부정비리와 연결된다. 족벌사학에 근무하는 교수와 직원은 대학운영에서 들러리와 같다. 족벌들이 인사와 회계 등 대학 내 요직을 장악하고, 주요 의사결정 경로와 학내 자원배분을 독점하고 있다. 교수·직원의 승진이나 재임용, 재계약 심지어 구조조정까지 이들 뜻대로 시행한다. 선진 과학기술과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의 후진적 경영, 우리 고등교육의 질을 낙후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순천의 청암대학교를 보자. 설립자의 아들이면서 대학운영 비리로 실형을 살았던 전 총장이 출소 후 여전히 학교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이 이사장인 것도 모자라 최근 딸이 이사로 교육부의 승인을 또 받았다. 지역사회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김포대학교도 비슷하다. 설립자인 부친 사망 후 대학경영에 나섰던 아들은 과거 학장 재직 중 사학비리로 해임됐지만, 얼마 후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그 후 5년간 총장이 6명이나 교체되는 한국고등교육사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했다. 그는 이번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하지 않고 미국으로 도피해 버렸다.


수원대학교도 그렇다. 교육부 감사에서 수십 건의 비리가 적발되고, 횡령과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총장이 설립자의 아들이다. 그는 비리로 해임됐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랜 기간 양심적인 교수들이 대학민주화를 위해 싸웠어도, 돌아오는 것은 해임징계 등 탄압뿐이었다. 이 대학 법인을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이 철옹성처럼 감싸왔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현행 사립학교법은 이사회의 구성에 있어서 이사 상호간에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그 정수의 1/4을 넘지 못하도록 돼있고 (21),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과 그 배우자가 학교장이 되려면 이사회 2/3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54조의3). 그러나 족벌사학 이사회에서 이사 2/3의 찬성을 얻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며, 이를 근거로 교육부에 승인신청을 하면 끝이다. 최근 4-5년간 관할청인 교육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은 경우가 한 번도 없다.


 


족벌사학은 총장 선임 과정도 낙후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총장 직선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으며, 법인에서 일방적으로 총장을 임명한다. 법인을 지배하는 이사장은 쉽게 자신의 친인척이나 측근을 임명하게 된다. 임명 총장이 바라보는 곳은 대학구성원들이나 지역사회가 아닌 이사장이다. 대학의 이념인 자율과 자치는 이렇게 해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대학은 문명사회의 공공재이다. 어떤 명분으로도 사유화할 수 없다. 미국 코넬대학 이사회의 수십 명 이사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설립자 후손이며, 스탠퍼드대학 이사회에는 설립자 후손이 아예 없다. 설립자와 그 후손들이 경영에 나서지 않는 전통 위에서 대학의 권위가 세워지고 시민들의 신뢰가 쌓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학 설립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립학교법의 올바른 개정이 사학발전과 족벌해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립학교법은 사학재단의 전횡을 비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철저히 개정돼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한 사립학교법을 가질 때가 됐다. 사학의 족벌경영은 이 시대에서 끝나야 한다. ()


 


 


202010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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