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논평 5] 전태일 50주기와 교수노조 2020.11.2

작성자
kpu
작성일
2020-11-02 11:00
조회
1404

전국교수노동조합에서는 10월부터 매주 월요일 [교수논평]을 발행하여 대학과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을 통해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정책 수립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전태일 50주기와 교수노조


 





오는 1113일이면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소신공양으로 노동해방의 길을 밝힌 지 50주기가 된다. 하지만 오로지 이익을 위한 자본의 눈물겨운 노력은 노동대중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오늘 하루도 270명이 다치고 7명이 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소위 촛불정권에서 산재사망자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산재사망자 절반으로 줄이겠습니다.”라는 구호로 산업재해 예방을 외친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노동유연화와 금융자본주의로 무장했던 신자유주의를 넘어 4차산업혁명이라는 공포적 마케팅을 앞세워 정보통신기술(ICT)과 디지털 판옵티콘적 감시, 그리고 플랫폼노동이라는 가상적 착취시스템을 앞세운 자본의 탐욕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는 없다.’는 공유경제와 플랫폼노동은 특수고용노동자(특고)라는 해괴한 형용 모순적 언어로 노동자성을 왜곡하며 노동자의 단결을 무력화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현장에서도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제조업 부흥 전략에 다름 아닌 기술적 신자유주의4차산업혁명으로 포장하여 인공지능과 공유경제가 세상을 구원 할 것처럼 대중과 미래세대를 교육이란 이름으로 현혹하고 있다.


 


교수노조를 결성한지 20년이 넘어 성년이 되면서 겨우 반쪽짜리 노동권을 얻게 될 전망이다.


교수노조의 출범부터 논란이 되었던 교수가 노동자냐?” 라는 해묵은 질문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제는 민교협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지식인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평가와 현장과 함께 숨 쉬는 노동자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까지 결국은 교수노조의 활동방식과 역할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첫째,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생산방식과 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과 투쟁전략을 위한 전문성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인천에 있는 한 대학의 노동과학연구소에서는 우체국 집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 평가를 통하여 최소 2000명 이상이 충원되어야 한다는 작업생리학적 근거를 제시하여 노사정이 연구결과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는 택배와 물류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의 적정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객관적 연구결과를 통하여 과로사의 원인이 강화된 노동강도와 열악한 작업환경임을 증명하는 것은 교수노조의 전문가로서의 기본적 역할이다.


 


둘째 노동조합을 결성 한지 20년이 지나서도 동지라는 호칭보다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하고, 팔뚝질과 조합 조끼가 낯선 것은 태생적 한계일까 아니면 노동자와 교수를 넘나드는 경계인으로 남고 싶은 것일까? 노동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마친 후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함께 구호와 팔뚝질로 노동문제의 모순을 대중에게 알려내고 집회 후 소주잔을 기울이며 다음 투쟁을 결의 할 때 교수가 아닌 동지로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전문가와 노동자 두 가지의 역할을 다할 때 교수가 노동자냐?”라는 해묵은 논쟁을 ! 교수가 노동조합을 하니 이렇게 달라지는 구나라는 평가로 바꾸어 낼 수 있다. 이처럼 교수노조가 진정한 노동조합으로 역할을 다할 때, 50년 전, 대학생 친구 한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던 전태일 열사가 교수가, 노동자로 동지가 되어 노동해방을 위한 대안 창출과 연대 투쟁으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지 않을까?








 


20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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