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수노동조합

성명서/보도자료

[2021교수논평-5] ‘코로나19, 교육의 본질을 고민할 계기를 던졌지만...’

작성일 : 2021-05-03
작성자 : kpu
조회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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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수노동조합에서는 3월부터 격주 월요일 [교수논평]을 발행하여 대학과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을 통해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정책 수립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 교육의 본질을 고민할 계기를 던졌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대학가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썰렁한 캠퍼스는 대학의 본질을 고민할 계기를 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대학들이 대학의 본질을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로 우왕좌왕했던 2020년 1학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2학기부터는 대학에서 학문과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대학에서 지식과 정보의 전수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하지만 대학이 지식과 정보의 전수만을 위한 곳이라면 지금과 같은 대학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은 사람이 모여 삶의 지혜를 축적하는 곳이다. 즉 사회 구성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에 적응할 능력을 배양하는 곳이다. 지식과 정보도 지혜를 기르기 위한 수단이다.


코로나19 이후 대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은 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로부터 각급 학교 당국,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 그리고 학생에 이르기까지 지금 상황을 ‘교육’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우려를 자아낸다. 간단한 조사라고 하지만 한 학교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첫 학기 한 달 만에 학생들의 대다수가 비대면 교육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의 위기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강(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세대라서 그렇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반면 교수들은 대다수가 대면 교육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학기 말에 이르면 학생들의 선호도가 증가하는 것 못지않게 대다수의 교수들이 비대면 수업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 모습이 어느 한 학교에서 나타난 특별한 사례라고 얘기할 수 없다. 지금 우리 교육 현장의 단면이다.


각 언론의 기사를 제공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를 통해 ‘코로나 대학 비대면 강의’라는 키워드로 지난 1년여 간의 기사를 검색해서 연관어 분석을 해보면, 등록금 문제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나온다. ‘교육’이라는 연관어는 아주 일부일 뿐이다. 연관어 검색만이 아니라 실제 기사들을 살펴보아도 교육 방식 혁신이라는 주제는 있지만 비대면 교육이 교육의 본질을 잘 구현하고 있는지를 논하는 기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간혹 여전히 대면 교육이 가치 있고, 중요함을 강조하는 칼럼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인간의 삶에서 대면이 지니는 공감과 연대의 효과만을 이야기할 뿐이지, 지식과 정보 전달을 넘어선 진정한 교육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한 주장은 아니다.


컴퓨터 활용 기술이 발전하여 온라인 동영상, 실시간 영상 수업이 가능해지고, 온라인 학습에 맞는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교육 과정의 단절이 발생하진 않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중학교 학력이 양극화하고 고등학교 학력이 저하됐다는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조사 결과는 중등학교에서만 발견되는 현실일까? 코로나19 상황이 좀 호전되던 시기에 대면교육을 시도했던 많은 대학들은 대면교육을 기피하는 학생들의 저항을 받았다. 학생만일까? 비대면 상황에 순응한 교육자들의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현실이 교육 진영에 중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점을 교육계는 깨닫고 있을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도 ‘교육’을 위해 필요한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교육 당국은 대학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비대면 교육이 지식·정보의 전달 측면에서 효율적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계발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우선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비대면 교육이 교육의 본질 구현에 맞지 않다는 단순한 주장이나, 과거의 대면 교육이 더 교육적이었다는 단정적 주장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 구현 측면에서 과거의 대면 교육이 적절했다 볼 수 없다. 대면교육이 더 적절한 방식이었을 수 있지만 과거 교육계가 교육의 본질 구현에 적합한 교육 방식 고민과 확산에 무심했기 때문이다. 이제 교수노조를 비롯한 교육계는 교육의 본질 측면에서 우리의 교육을 자성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대학을 다루는 언론 기사에서 교육이 중요한 연관어가 아닌 이유가 교육의 본질에 무관심한 언론 탓 만일까? ‘교육’에 무심한 교육계라는 형용모순이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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