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수노동조합

성명서/보도자료

[2021교수논평-1] 대학의 위기와 사립대학의 공영화

작성일 : 2021-03-04
작성자 : kpu
조회 :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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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수노동조합에서는 3월부터 격주 월요일 [교수논평]을 발행하여 대학과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을 통해 대학민주화와 고등교육 개혁의 주체로서 올바른 교육·대학정책 수립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대학의 위기와 사립대학의 공영화

 

배고픈 당나귀는 모진 매를 맞으면서도 풀밭을 떠나지 못한다.”

한동안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기반으로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우리의 대학들이 요즘 배고픈 당나귀 신세로 전락했다. 양손에 회초리와 당근을 쥔 교육부는 위기에 처한 대학들에 대해 순종을 요구하고 있고, 이 기세 앞에서 대학들은 맥없이 무릎을 꿇고 당근 한 조각이 던져지기를 기다린다. 현실 속 우리 대학의 슬픈 자화상이다.

 

한국의 고등교육이 직면한 위기는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수많은 보도를 통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도 대다수가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전자는 기성언론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대학재정의 위기이다. 이것은 대학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서 대학 입학생 수의 급감과 관련되어 있으며, 과거의 정책실패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다. 지방에 소재한 대학 상당수가 올해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채 2021년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를 시작으로 당분간 이들 대학의 운영상 위기는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대학의 운영 수입을 늘리기 위해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자율화를 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한국의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서 학생에게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만약 등록금 인상이나 자율화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의 일부 거대 사학(私學)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모든 대학의 입학 정원을 동시에 20% 정도 줄이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감독기관인 교육부는 연간 3만 명을 넘는 규모로 늘어난 정원 외 입학조차 규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위기에 처한 일부 사립대에서는 운영비 절감을 위해 교수·직원들의 임금 삭감을 시도하는가 하면, 책임시수의 연장을 획책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일부 대학의 교수들의 경우 이러한 사학의 횡포에 대책 없이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립대학들이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 많은 교수가 폐과로 일자리를 잃거나 전공 아닌 학과로 옮겨가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다음으로 후자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등 대학평가 작업이 지속되면서 대학의 이념인 자율과 자치는 무너지고 대학이 평가지표의 노예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현상이다. ‘대학평가라는 거대한 그림자로 인해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과 순수과학들은 대학교육과 학문의 변두리로 밀려났거나 아예 자취조차 없어졌다. 우리의 대학들은 평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충원율과 취업률이 지시하는 대로 일사불란하게 전공과 학제 개편을 하고 있으며, 언제까지 대학 교육의 정체성을 버린 채 이러한 일들을 지속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렸다. 돈이 되는 학문과 기예를 중심으로 학부와 전공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교수들은 승진과 재임용에 필요한 점수 쌓기에 여념이 없고, 학생들은 젊은이다운 비판의식과 역사의식을 잊어버리고 취업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알프레드 마셜이 강조했던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심성을 가진 지성인은 없고, 대학은 가슴까지 냉철한 영혼 없는 지식인을 양성하는 공장이 되었다. 상업주의가 판치는 지식공장을 누가 대학이라 부르겠는가?

 

일부 사립대에서는 교육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들을 총장이나 부총장으로 영입해 위기를 돌파하려 하지만, 영악한 그들(교피아)은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대학을 우롱할 뿐이다. 교피아들은 과거의 직위와 연고를 이용해 비리사학에 감사가 나오지 않게 로비하거나, 재직 중인 대학에 공적 기금을 지원받게 하고, 공익제보자가 누군지 알아내는 일 등을 하고 있다. 현재 사립대학에서 활약하고 있는 교피아들의 숫자가 15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교피아들은 그 대가로 고액연봉을 받지만, 그들의 맞춤형 봉사(?)가 대학의 위기를 타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학비리를 온존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런 편법으로 대학을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이 도리어 대학을 무지와 불법이 난무하는 암흑세계로 변모시키고 있다. 비리사학들이 교피아를 고용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안이 아니며, 본질적인 문제 해결방식도 될 수 없다.

 

대학의 위기를 대학의 부흥기로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은 있다. 우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럽처럼 대학교육재정 전부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국민은 대학교육비용을 개별적으로 부담하지 않는다. ()공공재인 대학의 운영을 시장에 맡기는 것은 좋은 제도라 할 수 없으므로 언젠가는 국가가 대학운영을 책임져야 한다. 두 번째 방안으로는 사립대학의 재정 일부를 정부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이미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국가가 사립대학운영비의 절반 이상을 지원해 주거나 교직원 인건비를 부담하는 제도인데, OECD에서는 이러한 대학을 정부책임형사립대학(government dependent university or college)이라고 분류한다. 명칭이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집에 있는 대로 공영형사립대학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대학은 교육부나 지자체 등에서 파견한 일정 수의 공익이사들을 이사로 받아들여 대학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면 된다. 모든 사립대학을 강제로 그렇게 만들 필요는 없고, 동의하는 대학만 참여해도 좋다. 일단 인건비가 국가에서 지원되면 대학재정은 훨씬 수월해진다. 대학교수들과 직원들의 임금이 표준화되어 일부 대학의 저임금이 사라지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및 정년계열과 비정년계열 교원들 간 임금격차도 해소할 수 있다. 재정적 이유로 포기했던 학문 분야가 회복되고, 비판정신이 살아있는 교육이 가능해진다. 지역의 대학이 살아나면, 지역사회도 함께 살아날 것이다.

 

대학이 이 시대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을 배출하고, 이들의 삶을 통해 대학의 가치가 실현될 때 고등교육의 밝은 미래가 있다. 고등교육기관의 발전은 교직원들의 인격에 대한 존중과 교권·노동권의 보장을 통해 교육·연구 활동을 촉진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비정년계열 교수들과 비정규직 교수들에 대한 터무니 없는 차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리의 전당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대학은 당근과 회초리 사이에서 사육당하는 당나귀가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초원을 질주하는 들소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 대학무상교육화나 정부책임형사립대학을 도입하면 현재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양대 위기 즉, 재정위기와 대학이념의 위기를 동시에 타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공영형사립대학 또는 정부책임형사립대학의 건설을 위해 모든 대학인들이 힘을 모아 투쟁해야 하는 이유이며, 지금이야 말로 투쟁을 해야 할 때이다. ()
 

 

20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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