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참여마당 > 회원칼럼
 
작성일 : 07-11-07 15:46
[칼럼/김창남조합원] 코미디 같은 풍경들
 글쓴이 : 교수노조 (218.♡.17.52)
조회 : 9,348   추천 : 0   비추천 : 0  

코미디 같은 풍경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출판업을 하는 한 선배가 자조하듯 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이 이렇게 웃기고 재밌는 일로 가득한데 책이 팔리겠어?" 신문보도를 보니 작년도 출판 매출이 그 전해에 비해 13% 가량 줄었단다. 올해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는데 이래저래 책은 더 안 팔리게 생겼으니 그 선배 처지가 더 딱하게 됐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웃지 못 할 코미디와 예상 못할 드라마로 가득하다. 신정아씨의 학력 위조가 드러나자 숱한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에 대한 폭로와 고백이 줄을 이은 것도 하나의 코미디다. 영화배우, 연극배우, 탤런트, 만화가, 코미디언, 외국어 강사, 거기에 종교인까지. 재미있는 건 이들 대부분이 주로 문화예술계 쪽 인사들이란 점이다. 문화의 시대라느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느니 하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는데 아마 상상력과 창의력도 학벌로 결정되는 모양이다.

하긴 그걸 잘 보여준 사례가 있긴 하다. 어디선가 신정아씨의 누드 사진을 입수한 한 신문사는 그걸 일면에 게재하면서 권력자에 줄을 대기 위한 '성 로비'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누드 사진을 게재한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코미디로 화답했단다. 국민들이 남의 나체를 '알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누드 사진을 곧바로 '성 로비' 의혹으로 연결하는 그 사고의 비약이야말로 기막힌 상상력과 창의력의 발로 아닌가. 모르긴 해도 그 신문사 기자와 간부들 대부분 이른바 '좋은 대학' 출신일 가능성이 높으니 상상력과 창의력이 학벌로 정해진다는 게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 벌어진 코미디 가운데 압권은 남북정상회담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3일 서울역 앞에서 벌어졌다는 보수 단체들의 집회였다. 남북정상회담을 규탄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자는 이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두 손을 쳐들고 기도를 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저주하는 연사들의 발언이 쏟아질 때마다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쳐댔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해병대 복장의 아저씨들과 단상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아가씨들의 모습은 가히 부조리극의 극치라 할만하다. 최근 웃을 일이 없었던 사람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이 동영상을 꼭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10월 3일 서울역에서 벌어졌던 보수단체의 집회 모습.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특히 웃겼던 장면은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맞추어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모습이었다. '아, 대한민국'이라.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폭력과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조이던 그 치 떨리던 시절에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가 있는' 대한민국을 찬양하던 이 노래, 한때 대학생들의 노래가사바꿔부르기, 요즘 말로 패러디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를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런데 '아, 대한민국'에 성조기라니. 정말 웃기지 않는가. 하여튼 이 나라의 '어떤' 개신교 사람들과 '어떤' 보수주의자들은 정말 심심치 않게 우리를 웃긴다. 하긴 그 사람들의 코미디는 한참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기분이 오히려 나빠진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최근 임기가 만료된 한 주한 외국대사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가 보여줄 온갖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며 임기 연장을 신청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 외국 대사가 말하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아, 대한민국'을 틀어놓고 성조기를 흔드는 식의 블랙 코미디가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런 것보다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엔 그런 역동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드라마틱한 과정을 궁금해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으니까. 예상을 뛰어 넘는, 그러나 끝나고 나면 아, 역시 대중의 지혜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그런 역동성의 드라마 말이다. 그거야 말로 내가 진정 보고 싶은 코미디이다. 그런 코미디라면 책이 좀 덜 팔린다 한들 출판업 하는 내 선배도 그리 섭섭해 하진 않을 것 같다.

위 글은 인권실천시민연대 10월 10일자 발자국통신에서 퍼온 글입니다

관련 링크 :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bal&nnew=2&y_number=128